이란은 ‘차도르’의 나라다. 만 9세 이상의 이란 여성은 외출할 때 검은 천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차도르를 걸쳐야 한다. 집안에서도 낯선 외부 사람과 얼굴을 대할 때면 차도르를 걸쳐야 한다.
이란에 살거나 방문하는 외국 여성에게 차도르 착용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차도르 착용이 익숙지 않은 외국 여성들은 외출을 꺼릴 정도다. 몇 년 전 한 한국 여성이 깜박 잊고 차도르를 걸치지 않고 외출했다가 적발돼 추방당한 적도 있다. 최근 이란 내에서는 외국 여성만이라도 차도르 착용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차도르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의무화됐다. 차도르 착용의 주목적은 여성이 낯선 남성 앞에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것. 이 때문에 차도르는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자주 거론돼 왔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이 나라에서 여성들이 조만간 차도르에서 해방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러나 차도르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란은 전체 인구의 60∼70%가 25세 이하인 ‘젊은’ 나라다. 좀 더 아름답게 보이려는 많은 젊은 여성의 강한 욕구 때문인지 차도르 패션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종전에는 검은색 일색이었으나 점차 회색 남색 등도 허용되는 추세다. 또한 머리만 감싸는 ‘루사리’를 차도르 대신 착용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2년 전에는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으로 차도르 패션쇼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이 패션쇼에 남성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됐다.
올 3월 이란 차도르 문화에 도전하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주인공은 한국의 여성 붉은 악마들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여성 출입금지 구역이던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이란 축구경기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비록 여성 붉은 악마들은 남성 붉은 악마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았지만 태극기를 루사리 대용으로 두르고 일사불란하게 응원전을 펼쳤다.
이란인들이 한국 여성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혹시 이란의 고유문화를 무시했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이란인은 이슬람 규율을 존중하면서도 자유로운 태극기 패션을 선보인 한국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를 보며 조금씩 외부 문화를 수용하고 조화를 이뤄가는 이란 사회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었다. 이란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처럼 자유로운 복장으로 경기장에 입장해 스포츠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여인국 SK네트웍스 테헤란 지사장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