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에 수백명의 인질이 희생된 베슬란 참사가 있고 나서 내가 직접 체험한 그들의 이야기를 한국사회에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북오세티야공화국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순박한 나라, 북오세티야가 테러와 죽음의 땅으로만 알려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TV를 통해 베슬란의 학교 지붕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북오세티야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구 67만명의 작은 나라에 사는 그들도 자신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이 믿어지지 않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오세티야는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남북으로 분단돼 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은 한국과 오세티야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해 남다른 동류 의식을 갖고 있다. 그것 말고도 오세티야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곳에는 우리가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에 잔치가 열리면 어른들은 상석에 자리 잡고 젊은이들은 주변에 모여 앉는다. 남성과 여성은 따로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
부근의 여러 공화국은 이슬람 색채가 강한 반면 북오세티야는 기독교(러시아정교회)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평화적이다. 북오세티야와 체첸은 종교적 이질성을 제외한다면 최근 분쟁을 일으킨 적이 없고 특별히 반감을 가질 만한 사건이 발생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체첸 반군이 이 나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러시아와 기독교에 대한 ‘대리 희생’의 차원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지에서는 유력하다. 그래서 북오세티야인들의 허탈감은 더욱 크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보다는 사건의 조기 종결에 더 관심을 둔 듯한 러시아의 대응방식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전쟁기념관에 가 보면 조국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명 피해는 감수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죽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의식이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는 그런 전쟁을 통해 대국이 됐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런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베슬란의 아이들도 그런 러시아의 역사 속에 태어났고 그런 흐름 속에 조금 일찍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으로 치부되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어른들의 잔인한 테러에 무고하게 희생된 아이들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일단 북오세티야 친구에게 1000달러 정도의 위로 성금을 대신 내 달라고 부탁했다. 조만간 직접 도울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북오세티야를 찾을 생각이다.
강희창 목사·前북오세티야 인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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