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김명호]등산문화 이렇게 다른가

  • 입력 2004년 12월 3일 18시 02분


오랜만에 한국에 가서 등산을 다녀온 아내의 얘기다. 안내도 없이 낯설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앞에 큰 바위가 길을 막았다. 아내는 어떻게 오를까 궁리하다가 마침 산을 내려오던 등산객에게 “꼭대기 가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아니, 노인네가 어떻게 이 험한 데를 올라가요. 잘못하면 떨어져 죽어요, 죽어.”

가당치도 않은 일을 한다는 표정으로 던지는 그의 말에 아내는 몹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6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지만 산을 즐겨 찾는다. 아내의 한국 경험담을 듣고 보니, 최근 내가 캘리포니아 주 동부에 있는 휘트니 산을 올라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해발 4418m의 휘트니 산은 알래스카 주 매킨리 산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대다수 등산객들이 1박 2일, 또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휘트니 산에 오른다.

휘트니 산에 오르려면 미리 주 산림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등반 인원은 하루 50명으로 제한된다. 등산료도 일인당 15달러씩 내야 한다. 많다면 많은 액수이지만 깨끗한 산을 즐기기 위한 ‘비용’으로 여기며 흔쾌히 지불한다.

나는 자동차로 7시간을 달린 후 등산용품을 채운 무거운 배낭을 지고 5시간을 걸어서 론파인 호수 야영장에 도착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이다. 입구에 세워 놓은 팻말에는 ‘호수에서 100피트 이내에는 천막을 치지 말고, 호수에서 아무 것도 직접 씻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주변에는 버려진 종이 하나 없이 깨끗했다.

미국은 국립공원 제도를 맨 먼저 시작한 나라다. 그만큼 자연을 정성스럽게 가꾸고 보호한다. 국민도 적극 협력한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규칙을 준수한다. 자신의 쓰레기는 전부 배낭에 담아가 지정된 곳에 가서 버린다.

이튿날 오전 5시 음식과 물만 가지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눈인사를 건네자 나에게 다가와 “나이도 많은데 이 높은 산을 오른다”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노인이 이런 위험한 곳을 오른다”는 핀잔은 없었다.

9시간에 걸쳐 올라간 정상에서 겨우 6분을 머물고 부리나케 하산했다. 고산(高山)의 날은 왜 그렇게 쉬 저무는지…. 어둠이 사방을 덮으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정상에서 만났던 등산객들이 내려오는 길에 나를 격려해줬다. 내가 쉴 때는 함께 쉬면서 용기를 북돋워 줬다. 그들은 내 천막이 있는 곳까지 줄곧 동행했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산을 찾는다. 내가 한국에 살았던 20∼3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심산유곡까지 찻길이 나고 방방곡곡이 행락객들이 버린 지저분한 음식물과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진국의 척도는 여러 가지다. 자연을 가꾸는 마음도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한국에 가서 산을 찾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금수강산을 금수강산답게 대접하는 아름다움이 한국에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김명호 목사·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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