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이지은]보편성과 독창성 사이에서

  • 입력 2005년 1월 27일 18시 35분


캐나다 대학 2학년생으로 컴퓨터 아트를 공부하고 있는 나는 종종 학업 내용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데 요즘이 바로 그렇다. 과제물이 부쩍 많아졌고 난이도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난도 컴퓨터 영상효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격주마다 영상작품을 제출해야 하는 동영상 수업은 재미있으면서 가장 힘든 과목이기도 하다. 제출된 과제물은 캐나다 방송국과 갤러리에 보내지고, 각종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기도 한다. 이 소프트웨어를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수업을 따라가는 데 더욱 힘든 것은 문화적 차이다. 5년 전 이민 온 나로선 이곳 대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공감대 형성에는 함께 자라며 즐겨 온 대중문화가 중요하다. 내가 아무리 ‘힙합’을 좋아하고 ‘심슨 만화’를 즐긴다 해도 그건 그저 취향일 뿐 같은 시절을 공유하지 않은 한 깊은 공감대를 확보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불안하다. ‘작품은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이곳에서 아무도 안 보는 걸 만들면 어떻게 하나’하고 내심 걱정한다.

얼마 전 담당교수와 과제물 선택에 대해 의논할 때 케이블TV 채널인 ‘스페이스 채널’에서 뽑아갈 ‘우주’에 관한 내용을 다뤄보겠다고 했다. 그는 회의적인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스페이스 채널은 경쟁이 가장 심한 분야인데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듯했다.

최종 발표 날 내 작품이 8개의 당선작 가운데 포함됐다. 내 작품이 뽑힐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다수 학생은 외계인, 우주선 등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다룬 반면 당선작들은 색다른 스타일과 주제를 채택해 창의성이 돋보인 것들이었다. 나 역시 여성스러운 색깔과 꽃무늬 등으로 우주를 표현했다.

나 같은 이방인들에게 문화적 보편성과 독창성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언제나 힘들다. 나에게 영어는 늘 외국어일 테고 캐나다는 늘 외국일 것이다. 나는 캐나다인과 같아질 수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면 작품이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각자의 독특한 면이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질 때 작품의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내가 다르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했던 신선한 점을 보여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마음은 국경과 나이를 초월해 통하는 부분이 있어 작가의 진정성이 어떻게든 전달되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 한국에선 영화나 다른 예술분야의 관객층을 세계로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 나라에서만 통하는 시각적 심벌과 스타일이 다른 문화에서도 이해될 수 있도록 조금씩 변형돼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창작자의 독창성에서 나온다. 창작자의 내면세계가 결국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는 근본적인 원칙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지은 대학생·캐나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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