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컴퓨터 영상효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격주마다 영상작품을 제출해야 하는 동영상 수업은 재미있으면서 가장 힘든 과목이기도 하다. 제출된 과제물은 캐나다 방송국과 갤러리에 보내지고, 각종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기도 한다. 이 소프트웨어를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수업을 따라가는 데 더욱 힘든 것은 문화적 차이다. 5년 전 이민 온 나로선 이곳 대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공감대 형성에는 함께 자라며 즐겨 온 대중문화가 중요하다. 내가 아무리 ‘힙합’을 좋아하고 ‘심슨 만화’를 즐긴다 해도 그건 그저 취향일 뿐 같은 시절을 공유하지 않은 한 깊은 공감대를 확보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불안하다. ‘작품은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이곳에서 아무도 안 보는 걸 만들면 어떻게 하나’하고 내심 걱정한다.
얼마 전 담당교수와 과제물 선택에 대해 의논할 때 케이블TV 채널인 ‘스페이스 채널’에서 뽑아갈 ‘우주’에 관한 내용을 다뤄보겠다고 했다. 그는 회의적인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스페이스 채널은 경쟁이 가장 심한 분야인데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듯했다.
최종 발표 날 내 작품이 8개의 당선작 가운데 포함됐다. 내 작품이 뽑힐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다수 학생은 외계인, 우주선 등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다룬 반면 당선작들은 색다른 스타일과 주제를 채택해 창의성이 돋보인 것들이었다. 나 역시 여성스러운 색깔과 꽃무늬 등으로 우주를 표현했다.
나 같은 이방인들에게 문화적 보편성과 독창성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언제나 힘들다. 나에게 영어는 늘 외국어일 테고 캐나다는 늘 외국일 것이다. 나는 캐나다인과 같아질 수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면 작품이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각자의 독특한 면이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질 때 작품의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내가 다르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했던 신선한 점을 보여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마음은 국경과 나이를 초월해 통하는 부분이 있어 작가의 진정성이 어떻게든 전달되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 한국에선 영화나 다른 예술분야의 관객층을 세계로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 나라에서만 통하는 시각적 심벌과 스타일이 다른 문화에서도 이해될 수 있도록 조금씩 변형돼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창작자의 독창성에서 나온다. 창작자의 내면세계가 결국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는 근본적인 원칙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지은 대학생·캐나다 거주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