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안 거대한 유리방에는 명나라 대장군의 석릉이 복원돼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사방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낙조를 받으며 명상에 잠기곤 했다. ‘과학(경제)이 없으면 달릴 수 없고, 예술이 없으면 멈출 수 없으며, 종교가 없으면 머무를 수 없다’는 등의 상념에 빠졌다.
그러다 보면 문득 시간이 멈추고, 타국에서의 각박한 삶이 마치 어린 시절 왕릉으로 소풍 온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힘들고 어려웠던 유학 시절 박물관은 나의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한 모금의 맑은 샘물이었다. ‘한 시간 무료 관람’이라는 인정어린 제도적 배려가 없었다면 가난했던 나는 그 샘물을 맘껏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공공재란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도 배제하지 않는 재화’를 말한다. 박물관 무료 개방보다 더 좋은 공공재가 있을까. 사회가 너그럽게 제공하는 문화적 공공재를 누릴 수 있는 건 당시 나처럼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축복이었다.
역사가 짧은 캐나다에서 전통문화는 희귀재다. 그리고 상류층 인사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박물관에서 자원 봉사하는 것을 문화적 긍지로 여긴다. 공공재는 사회계층 간에 자원과 인정이 돌고 도는 자발적 순환경로가 된다. 관공서 같은 다른 나라 박물관들과 달리 이곳 박물관은 봉사자들의 활기로 가득하며 동네잔치 분위기다.
박물관은 길 건너 호텔이나 백화점에 못지않게 세련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빈자(貧者)에 대한 배려도 깍듯이 하고 있는 셈이다.
몇 년 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러 “여기도 무료 관람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어이없다는 듯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되물었다. 풍성한 공공재는 캐나다의 국가 정체성을 부여해 주고 이 사회가 메마르지 않게 촉촉하게 지켜 준다. 캐나다가 세계인들이 이민 와 살고 싶은 나라가 된 것도 이 같은 문화적 배려 때문이 아닐까.
나는 학업을 마친 후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6년 전 뜻있는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마침내 왕립박물관에 한국관이 개설됐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나는 한국관 후원단체 대표직을 맡았다.
한국관은 상설 전시 외에 매년 ‘한국문화의 밤’ 행사를 주관하는데 2000∼3000명의 관객들이 참가한다. 한국관은 또 캐나다에 사는 한인 2세들에게 자기 정체성의 실마리를 던져 주는 역할도 한다.
얼마 전 한국관 행사를 준비하다 유학시절 자주 찾던 명나라 대장군 석릉에 들렀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한국관을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렵고 힘들던 시절 캐나다가 나에게 베풀어 준 문화적 배려에 대한 ‘결초보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재동 캐나다 한국문화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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