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 사람들<6>]토머스 메니노 美보스턴시장

  • 입력 2002년 5월 12일 18시 12분



도시를 굽이쳐 흐르는 찰스강의 강변에선 젊은이들이 조정을 즐기고 강가 잔디밭엔 몸을 최대한 드러낸 주민들이 햇살을 즐기는 보스턴.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3선 시장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는 곳이다. 범죄나 마약,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시장도 많지만 보스턴의 토머스 메니노 시장(59)은 드물게도 암과 전쟁하는 중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미국에서 한해 50만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암을 ‘1급 살인자’라고 부르죠. 보스턴에서도 암은 심장병에 이어 사망원인 두 번째이며 10년마다 3만명이 암에 걸립니다. 본인이나 가족을 통해서 암과 접촉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조기검진 등 노력을 하면 그중 절반은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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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전쟁’에 나선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립선암에 걸려 고생 끝에 10여년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부친 이야기를 덧붙였다. 메니노 시장은 “강건한 체질인 부친의 몸무게가 32㎏으로까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암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1997년 그는 시 및 산하단체 공무원 2만명 전원에게 매년 4시간씩의 유급 휴무제를 도입했다. 암 검진을 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제도는 뱅크보스턴(후에 플리트은행과 합병)에서, 2년뒤에는 같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스프링필드시에서 채택됐다. 정기검진 시행 후 시청 직원 2명이 암세포를 초기에 발견하는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 보스턴 시청 관계자의 귀띔.

메니노 시장은 ‘전쟁 전략’을 짰다. 1998년 의료 및 사회사업 전문가, 언론인, 투병 끝에 암을 이겨낸 환자 등을 초빙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이들에게 시가 무엇을 어떻게 돕는 것이 좋은지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해서 제시하도록 주문했다.

메니노 시장은 이 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9개월간 계속된 이 팀의 회의에는 꼭 참석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식당업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1998년부터 전 식당 금연제를 강행한 것도 이 팀에서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한 때문이었다.

보스턴 보건위원회에서 ‘암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존 리치 국장은 “메니노 시장은 ‘암과의 전쟁’을 위해 주민홍보나 언론인터뷰 기금모금 등 관련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고 말했다.

메니노 시장의 타깃은 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 그는 이들이 암 검진과 치료에 쉽게 접근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첫째는 10만달러를 들여 구입한 무료 순회 X레이 유방암 검진차량. 메니노 시장은 “매달 300명에 대해 검진을 하는데 25%가 이런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검진을 받으며 전체의 5%에게서 의심스러운 종양이 발견된다”고 검진의 효과를 설명했다. 둘째는 항암치료 환자의 교통편 무료 제공. 매달 2000명의 통원 환자가 병원에서 받은 바우처로 택시비를 계산한다. 택시비는 병원들이 낸 기금에서 충당한다. 셋째는 전체 가구에 암 예방과 검진에 관한 안내 브로슈어 배포. 여기엔 제작비 25만달러가 들었다.

메니노 시장이 ‘암과의 전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보스턴이 의료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로선 도시의 여건을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보스턴시 롱우드의 하버드의대 바로 옆에 있는 아동병원은 소아과 부문에서 미국 1위로 평가(2001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되고 있다.

그 옆의 대나화버 암연구소는 암 분야 4위로 평가받는다. 길 하나만 건너면 초대형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메디컬센터가 위용을 자랑한다. 시청 근처에 종합성적 미국내 3위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포함해 보스턴엔 최고수준의 병원이 모두 11개 있다.

‘암과의 전쟁’의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암 발병 건수나 사망자 수가 줄었다는 등의 통계가 나올만한 기간도 되지 않았다. 메니노 시장은 “시민들이 암에 대해 잘 알고 생활 속에서 작은 노력을 기울여 암을 예방하며 정기검진 및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탈리아계인 메니노 시장은 9년간 보스턴 시의원을 거쳐 1993년 11월 시장에 처음 당선됐다. 이어 4년 임기의 시장에 두차례 더 당선돼 2005년까지 시장직을 맡게 됐다.

그는 교육 직업 건강 안전 등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아이디어를 찾고 실천해나가는 시장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보스턴에서 발행되는 글로브지는 “거리에서,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메니노 시장의 활약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각지의 시장들은 메니노 시장에게서 한수 배우기 위해 보스턴을 견학코스로 삼기도 한다.

메니노 시장은 작년 ‘메인스트리트 프로그램’을 통해 대로변의 상점 건물을 시에서 돈을 들여 수리도 해주고 가게들이 영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불편사항을 개선해주는 작업을 했다고 보스턴시 관계자는 소개했다.

보스턴시는 이어 ‘백스트리트 프로그램’을 통해 작은 길가에 있는 과자가게 구두수선점 등을 지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같은 각종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 보스턴시는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로부터 처음으로 A+ 등급을 받았고 무디스로부터 역시 처음으로 A-1 등급을 받았다.

메니노 시장의 별명은 ‘도시의 수리공(urban mechanic)’. 작년 ‘가버닝’이라는 잡지는 메니노 시장을 ‘올해의 공직자’ 9명 중 한 명으로 뽑으면서 그에게 ‘도시의 마에스트로(거장)’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메니노 시장 본인은 “나는 ‘도시의 수리공’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암예방-검진 ‘브로슈어’ 24만 가구 배포▼

보스턴시가 배포한 암 예방 및 진단 안내 브로슈어.
보스턴시가 24만에 이르는 전 가구에 배포하는 ‘암과의 전쟁’ 브로슈어는 암 예방 및 검진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여성은 자궁암 및 유방암, 남성은 고환종양 및 전립선암 검사를 18세 이후 3년마다, 40세 이후 매년 받도록 권한다. 남녀 모두 피부암 검사를 1∼3년마다, 대장암 검사는 50세 이후 매년 받는 게 좋다고 설명한다. 암 예방에 관해선 △금연 △하루 최소 30분간 운동 등 일상적인 실천방안 7가지가 적혀 있다.

보스턴 보건위원회 ‘암과의 전쟁’ 담당 존 리치 국장은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그레이엄 콜디츠 교수의 감수를 받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한다”고 말했다.

보스턴시가 이 브로슈어를 전체 가구에 배포한 것은 암에 대한 행정당국의 대응으로는 아주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시에서는 브로슈어를 스페인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8개국어로 번역해 희망자에게 따로 보내준다. 리치 국장은 “번역 자원봉사자를 구해 한국어판도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브로슈어를 통한 홍보효과는 즉각 나타나지는 않지만 TV캠페인 등과 병행해 주민들에게 암 조기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보스턴 보건위원회는 평가했다.

▼메니노市長 ‘암과 전쟁’ 공로 최우수상▼

미국시장협회 새 회장단.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회장인 토머스 메니노 보스턴 시장.
미국 시장들은 시정운영 경험과 아이디어를 서로 나눈다. 그 무대는 미국시장협회(USCM·www.usmayors.org).

1933년 인구 3만명 이상 도시의 시장들이 만든 이 협회는 미 전역의 시장 1139명이 회원이다. 7일 임기 13개월의 새 회장에 취임한 토머스 메니노 보스턴 시장은 “전국적인 난제인 주택난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보자”면서 21∼22일 워싱턴에서 ‘전국주택포럼’을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시장협회는 각 시장이 참여한 21개의 태스크포스팀을 운영중이다. 이들은 에너지문제, 시장과 경찰의 관계, 시장과 공립학교의 관계, 마약퇴치방안, 디지털시대의 도시 등 각 시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시장의 시각에서 연구한다.

시장협회는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잘 개발해 시행중인 시장을 찾아내 매년 우수시장상을 수여한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획기적인 내용이 아니라 시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고치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시장이 상을 받는다. 올해도 공원, 쓰레기, 어린이 교육, 무주택자, 출퇴근 문제 등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이슈에 열심히 대응한 30개 시가 본선에 올라 이 중 10개 시가 최우수 또는 우수시장상을 받게 된다.

작년 인구 10만명 이상의 대도시 부문 최우수시장상은 메니노 보스턴 시장이 받았다. 주민들이 암 검진 및 치료를 편하게 받을 수 있게 한 ‘암과의 전쟁’ 프로그램을 시행한 공로였다.중소도시 부문 최우수시장상은 유휴 시유지를 민간자본으로 개발해 영세가정에 주택을 공급하고 창업 중소기업에 사무실을 제공한 미시시피주 서쪽에 있는 인구 2만명의 내체스시 행크 스미스 시장이 받았다.

보스턴〓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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