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이영이/日부촌 아파트값<서울 강남아파트값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44분


일본 도쿄(東京)는 세계 대도시 중에서 살인적인 고물가로 유명하다. 교통비 식료품비 등 일반 체감물가는 서울보다 3배 정도 높은 수준. 또 땅덩이가 좁은 섬나라여서 부동산가격도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기자가 살고 있는 신주쿠(新宿) 사택은 전용면적이 18평밖에 안되지만 매매가격은 2500만엔(약 2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처음 입주했을 때 “누가 2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이렇게 좁은 집에서 살까”라며 고개를 저었을 정도다.

도쿄에 부임한 지 2년9개월. 요즘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경이적인’ 아파트값 상승을 자주 화제에 올린다. 한국 사정을 좀 아는 일본인들은 “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를 닮아 가는 것 아니냐”고 한마디씩 한다.

도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다는 시로가네다이(白金臺)의 시세를 알아봤다. 전용면적 15평짜리가 3180만엔(약 3억1800만원), 20평짜리가 5850만엔(약 5억85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이 동네는 부촌(富村) 중의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은 어떤지 인터넷을 뒤져봤다. 삼성동 AID아파트의 분양면적 15평짜리가 4억5500만원, 22평짜리가 6억5000만원으로 나와있었다. 전용면적으로 계산하면 시로가네다이 아파트보다 1억∼2억원가량 비싼 셈이다.

지난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4222억달러로 일본(4조1729억달러)의 10분의 1을 조금 넘는다. 1인당 국민소득도 한국(8900달러)은 일본(3만3000달러)의 4분의1 수준이다. 서울과 도쿄 최고급주택지 20평 아파트를 사려면 한국인은 국민소득 57년분, 일본인은 15년분이 필요한 셈이다.

신규분양과 중고아파트의 가격 변화를 보자. 올 상반기 도쿄 23구의 신규분양가는 평당 199만엔(약 1990만원), 10년짜리는 165만엔(약 1650만원)으로 신축 아파트가 20%이상 비싸다. 그러나 서울은 분양가가 평당 966만원에 불과하지만 사는 즉시 값이 뛰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아파트가 낡으면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게 당연한데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10년 이상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과는 정반대로 한국은 언제 외환위기를 겪었냐는 듯이 무서운 기세로 소비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일경제 역전’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하지만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부동산 가격의 비정상적인 역전은 하나도 반갑지 않다.

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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