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유엔 평화유지국(DPKO) 전문직원으로 10년째 활약 중인 송혜란(宋惠蘭·46)씨는 최근 동티모르 주재 업무를 마치고 다음 임무를 준비하던 중 뉴욕에 잠시 들렀다. 동티모르의 유엔 가입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유엔은 어려서부터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그래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무작정 유학을 왔죠.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이 터지면서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강화되던 1993년 유엔 직원으로 첫발을 내디뎠죠.”
기자 출신인 그의 첫 자리는 소말리아 유엔공보관. 1년 반 동안 현지에서 신문을 발행했다. A4용지 앞뒤에 주민들에게 알릴 정보를 담은 일간 ‘만타(오늘이라는 뜻)’를 현지어로 5만부, 영어로 5000부씩 찍어 배포했다. ‘만타’는 전란에 지친 주민들에게 열려진 유일한 창(窓)이었다.
그는 이어 유고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슬픔의 땅’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보스니아로 날아갔다. 이번에도 전쟁의 슬픔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이때의 체험을 담아 ‘세계가 주목하는 곳에 그녀가 있다’(초당)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무슨 인연인지 편안한 곳보다는 ‘뜨거운’ 곳이 좋아요. 지금 유엔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당연히 이라크죠. 이라크 근무가 확정되면 곧 달려갈 겁니다. 중동에선 서양인보다는 동양인이 일하기가 좋아요. 여성들이 유리한 점도 많습니다.”
그는 아시아권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티모르에서는 13개 군(郡) 가운데 마나투투군을 거쳐 한국의 상록수부대가 파견나와 있던 라우템군의 지방행정관으로 일했다. 안전문제에서 도로와 주택의 복구, 위생과 교육까지 모두 챙겨야 했다. 자신이 임시정부의 수반이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밤낮을 잊고 일에 매달렸던 탓일까, 폐허 같았던 마을엔 생기가 돌았고 유엔 깃발을 보면 주민들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밝게 웃었다.
“분쟁지역에 유엔이 들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비정부조직(NGO)들이 활동할 영역이 많이 생깁니다. 동티모르 재건작업엔 국내 기업과 단체가 학용품 컴퓨터 의류 등을 보내 줘 한국이 최대의 지원국으로 기록됐어요. 수암장학회나 월드크리스천프런티어(WCF) 같은 선교단체도 현장지원을 해주었고요. 이라크에서 일하게 되면 이번에도 주변이 안정되는 대로 국내외 NGO들을 현지로 초대할 생각이에요.”
뉴욕〓홍권희특파원konihong@donga.com
▼송혜란씨는▼
▽1956년 전북 정주 출생
▽학력〓이화여중고 졸업, 연세대 2년 재학 중
미국 유학해 1983년 빙햄튼 뉴욕주립대 졸업
(사회학과), 1989년 컬럼비아대 대학원 졸업
(국제학과·석사)
▽경력〓미주한국일보 기자, 유엔평화유지국
전문직원으로 소말리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보스니아-동티모르에서 근무
▽유엔지원 동기〓“국제무대에서 뛰는 것이 중고교
시절부터의 꿈이었다. 대학원에서 유엔을
전공했고 기자시절엔 유엔을 담당했다.”
▽유엔 지원자에 대한 조언〓“한국의많은젊은이가
세계를 위해 봉사할 자세가 돼 있고 자질도
있음을 동티모르를 비롯한 현장에서 여러 번
확인했다. 한국에서 아옹다옹하지 말고 실력
있는 사람은 세계 무대로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뭔가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해
줬으면 한다.”
▼평화유지 활동 PKO▼
분쟁이 악화돼 자체 해결이 곤란한 지역에 유엔이 전문직원을 파견하거나 각 나라가 자발적으로 군사 및 민간요원을 파견해 평화유지를 돕는 활동. 초기엔 주로 안보 업무였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선거관리와 정치활동 지원, 건설, 구호, 인권 등의 업무가 추가됐다. 유엔은 현재 동티모르를 포함해 세계 15군데에서 평화유지활동을 펴고 있다. 유엔사이트(www.un.org/Depts/dpko/dpko/home.s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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