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이민 100주년]<10·끝>美 이민1,2세가 말하는'성공비결'

  • 입력 2003년 2월 24일 19시 06분


《“모두가 노자 한푼 없이, 그러나 큰돈을 모아 가지고 떵떵거리며 돌아올 날을 꿈꾸면서 떠나가는 젊은 일꾼들이었다….”

100년 전 제물포항을 떠나던 하와이행 이민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가 주요섭의 소설 ‘구름을 잡으려고(1930년 동아일보 연재소설)’의 일부분이다.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등지로의 본격 이민도 30년을 넘어 1.5세, 2세가 활발히 전면에 나서고 있다. 올 한 해는 미국 한인들이 과거와 미래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기가 되고 있다. 미국의 한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민 1, 2세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김대실씨와 소설가 이창래씨에게서 들어본다.》

▼연재물 목록▼

- [미국이민<9>]교육이민 & 조기유학
- [미국이민<8>]그늘속의 불법체류자들
- [미국이민<7>]동포들이 말하는 한국의 이민정책
- [미국이민<6>]코리안 아메리칸 '나는 누구인가'
- [미주이민<5>]‘교포 사랑방’ 한인교회
- [미주이민<4>]소수민족 거주지서 美 문화공간으로
- [미주이민<3>]한국魂 알린다
- [미주이민<2>]IT등 첨단분야 도전…
- [미주이민<1>]“태평양 건너엔 돈나무가…”

▼美 문단의 스타 이창래씨▼

단 두 권의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1995)’와 ‘몸짓뿐인 인생(Gesture Life·1999)’으로 미국 문단의 ‘스타’가 된 이창래씨(38).

‘주류’에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다룬 그의 두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미 문학계의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줬다. 이씨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흑인 여성작가 토니 모리슨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지난해 4월 미 명문 프린스턴대 인문 창작과정 교수로 임용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사실상의 이민 2세로 예일대 영문학부 출신이며 영어로 소설을 쓰는, 그러나 모국인 ‘한국’이 언제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이창래의 정체성’을 들어보기 위해 프린스턴대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본인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내가 자라온 미국에서 난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하기 전까진 동양인 외모의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반면 한국에 나가 거리를 걸을 때면 그 누구도 나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서툰 한국어를 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웃음). 나는 ‘미국인이냐 한국인이냐’는 이분법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며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독특한 종류의 한국인이자 미국인(my own kind of Korean and American)’이다.”

―백인 부인과의 사이에 둔 두 딸이 훗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면 어떻게 조언해 줄 것인가.

“해답은 없다. 다만 모두가 겪는 과정이며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줄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해답은 고통스럽겠지만 스스로가 찾아내야만 한다. 내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이다.”

3세 때 미국에 온 그는 두 딸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유일한 한국어가 ‘아빠’라면서 “딸들에게 한국을 일깨워주려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한인 미국이민이 100주년을 맞았다. 미 주류사회는 미국의 한인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북핵 문제, 로스앤젤레스 폭동 등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만 한인사회는 언론에 등장하고 주류사회의 관심이 되곤 했다. 미국인들은 아직도 한인이라고 하면 뉴욕의 청과물상, 세탁소 주인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2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사람 이야기’들이 뉴욕 타임스와 같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조언해 준다면….

“지난해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의예과나 공대에 다니는 한인 학생들이 내게 와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 지금 이곳에서 떠나고 싶다’고 토로했다. 한인 부모들은 자식들이 안정적인 길을 가도록 강요하곤 한다. 그러나 자식들의 재능과 꿈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길이다. 이민 자녀들이 행복해야 한인사회도 밝아질 수 있다.”

―한인들은 1, 2세를 막론하고 ‘끼리끼리’만 어울린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데….

“문화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들끼리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필연적이다. 다만 그것이 폐쇄적인 ‘이민자들의 앙클레이브(enclave·집단 거주지)’가 되면 곤란하다. 얼마만큼 미국적, 한국적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이를 배워나가려는 용기가 중요하다.” ―미국 문단에서 활동하면서 ‘이창래’라는 한국 이름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다른 이름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생각해 보지도 않을 것이다. 미 문단에 이국적인 내 이름 석자가 각인된다면 그것이 다른 소수계, 외국계 작가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린스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이창래씨 약력▼

△1965년 서울 출생, 3세 때 가족 미국 이민

△예일대 영문과·오리건대 대학원 졸업

△1993년 오리건대 문예창작과 교수

△1995년 장편 소설 ‘네이티브 스티커’ 출간

△1996년 헤밍웨이펜 문학상, 반스앤노블 신인작가상 등 수상

△1998년 뉴욕시립대 헌터컬리지 창작과정 학과장

△1999년 권위종합문예지 ‘뉴요커’, ‘21세기에 활약 할 미국인 소설가 20인’으로 선정

△2002년 프린스턴대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

▼다큐 영화감독 김대실씨▼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김대실씨(63·여·뉴욕 맨해튼 거주)는 미국의 한인사회를 다분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성공에 집착하고 사회활동이 부족하며 백인들 대열에 끼려고만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1962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단돈 25달러를 손에 쥐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는 학자(종교학), 공무원을 거쳐 자비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의 흑인폭동 직후 찍은 ‘사이구(4·29)’, 사할린 동포 노인들의 삶을 다룬 ‘잊혀진 사람들’, 한국의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침묵의 소리’ 등이 그의 작품.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그의 아파트를 찾아 한인 이민 100년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한국에서 사는 것과 미국에서 사는 것은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미국은 땅이 커서 그런지 한국에서와 달리 ‘숨쉴 공간이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은 어려움이 태산 같다. 미국은 민주사회이고 남녀가 평등한데다 기회의 나라이지만 동시에 흑백 인종차별, 소수민족에 대한 푸대접 등도 많다. 많은 한인들이 그런 문제를 간과하고 힘있는 백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려 한다. ‘억압받는 자’인데 ‘억압하는 자’쪽으로 붙으려고만 한다. 백인들은 소수민족에 대해 어느 선까지는 허용하지만 경쟁 상대가 되면 태도가 달라진다.”

―미국의 한인 가운데 성공한 사람도 많은데….

“미국의 한인들은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돈을 버는 데 주력했다. 누가 돈을 많이 벌었느냐, 누가 한국에서 더 대접을 받느냐, 누가 힘있는 백인과 더 가깝게 지내느냐를 갖고 한인들끼리 경쟁하는 분위기가 됐다. 이민 100년 기념 행사를 보니 ‘누가 무엇을 했다’는 것만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이민 초기에는 외로우니까 자기들끼리 모여 살고 성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한인들은 좀 심하다. 코리아타운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 성공의 속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한인들에게 어떤 사건이었나.

“그것은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오랜 분노가 터진 것이다. 한인과 흑인의 갈등은 원인이 아니라 그런 양상으로 표출됐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 주류 언론들은 한인들이 흑인이나 남미계를 괄시해왔고 그 결과 폭동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했다. 한인들은 개별적인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흑인 남미계와 힘을 합해 미국사회를 교정해가야 한다.”

김씨는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젖은 모래알’의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소수민족의 단결을 외치면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이젠 한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빨리 돈벌어 성공하기보다 ‘나는, 우리(한인들)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문제를 더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시민으로서 사회정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이 세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감시도 해야 한다. 좀 더 깊고 넓고 멀리 보는 삶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이민 1.5세, 2세, 3세들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한인 자녀들은 과연 다른가.

“김치 먹으면서 미국식 가치관을 배운 셈이다. 미국도 성공적이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민주적 가치관이 잘 살아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교육을 받고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것은 마치 극장에서 무대가 모두 잘 보이는 좌석에 앉은 것처럼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아이비리그를 돌며 한인 2세 대학생들에게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다룬 영화 ‘사이구’를 보여주니까 ‘이런 현실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이런 인식을 다 잊고 선배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김대실씨 약력▼

△1938년 황해도 출생

△감리교 신학대학 졸

△1970년 보스턴대 종교학박사 학위 취득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홀리요크대 종교철학 교수

△미 연방 및 뉴욕시 미디어 프로그램 담당

△1988년 포드재단 의뢰로 ‘아메리카 비커밍’ 영화 제작,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감독 활동 시작

△로스앤젤레스 폭동 영화 ‘사이구(4·29)’ 속편인 ‘젖은 모래알’ 편집 중

▼특별 취재팀▼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

박래정 국제부기자 ecopark@donga.com

김정안 국제부기자 credo@donga.com

김선우 사회1부기자 sublime@donga.com

강병기 사진부기자 arch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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