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바그다드 긴급 르포]권기태/제 2信

  • 입력 2003년 1월 26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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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7시50분 바그다드 외곽 구(舊)카날호텔. 사찰단을 비롯한 유엔 기구들이 본부로 쓰고 있는 이 건물 입구 검문소에서 고함 소리와 함께 격투가 벌어졌다. 불과 몇 초 전 기자 옆을 지나갔던 젊은 이라크인이 검문에 불응한 채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유엔 보안요원들이 제지하자 칼을 빼든 것이다.

유엔 사찰단 본부 습격사건

옆에 있던 이라크군 보안대원들까지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그는 칼을 3개나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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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전야 바그다드 긴급 르포 1

유고 출신의 APTN방송 기자는 “칼이었기에 망정이지 폭탄이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것이다”며 “사찰과 미국의 위협이 거세어짐에 따라 이라크인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곧이어 본부 외곽을 지키던 이라크 경비병들이 장전한 채 비상경계에 들어갔다. 사찰단을 따라 사찰 장소까지 가기 위해 본부 외곽에서 대기 중이던 우리 기자들은 안전선 바깥으로 멀찍이 물러나야 했다.

‘뉴욕 전화’ 쓰는 사찰단

바그다드 모처에서 비밀리에 만난 한 사찰단으로부터 극도의 보안 속에 이뤄지고 있는 사찰활동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평단원들은 사찰 전날이나 당일 오전 바그다드 유엔본부 건물 안의 반(反)도청장비들이 설치된 일종의 철갑방인 ‘챈서리(Chancery)’에서 지도 위에 표시된 행선지와 임무를 전해듣는다. 이 자리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정보기관이 포착한 사찰 정보를 전달받는다. 본부 건물에는 높이 30m 되는 타워형 위성 안테나 2대와 초대형 원형 안테나 2대가 설치돼 있다.

사찰단원들이 아무 설명 없이 차로 달리기 시작하면 본부 외곽에 대기 중인 이라크 국가사찰위원회 소속 기관원들이 따라간다. 이는 공식적으로 허용된 추적이다. 사찰단원들은 생물무기팀, 화학무기팀, 미사일팀과 이들을 포괄하는 멀티팀으로 크게 나뉘는데 기관원들은 매일 이들 4개팀을 뒤쫓는다.

사찰단원들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단의 이라크인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맞이한다. 이미 연락을 받은 듯했다. 사찰단원들의 차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기관원들이 예상 사찰장소에 무전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찰단원들의 차량 속도는 평균 120㎞ 이상이다. 이들의 질주를 위해 교통신호도 사전에 통제된다.

사찰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된다. 98년 사찰에 불응했던 태도와는 달리 지금은 이라크인들의 협조가 비교적 잘되고 있는 편이다. 바그다드 내의 알 카라다 지역 대통령궁, 알 사주드 지역 대통령궁도 제지나 지체 없이 사찰했다. 사찰단원들이 일과 이후 숙소인 알 하이야트 타워 호텔로 돌아오면 근처에 잠복하거나 대기 중인 사복 기관원들의 감시가 새롭게 시작된다.

사찰단원들은 반(反)도청무전기나 위성전화를 사용한다. 본부 내에서 코앞의 바그다드 시내로 전화를 할 때도 위성전화를 쓰며, 이때 미국 뉴욕에서 바그다드로 전화를 걸 듯이 국제 전화번호를 눌러야 한다. 뉴욕의 사찰단 본부에 직접 연결된 전화이기 때문이다. 사찰단원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한다. 보안 문제도 있지만 유엔의 반입 금지로 이라크는 휴대전화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라크 현지 사찰단은 매일매일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뉴욕 본부에서 이를 취합해 27일 안보리에 종합보고서를 낸다. 기자와 접촉한 사찰단원은 보고서의 윤곽에 대해 “현재까지 사찰 내용만으로 봐선 아마 핵무기 보유는 부정적인 결론이 날 것 같지만 생화학무기에 대해선 이라크가 위반한 부분이 있다”고 귀띔했다.

핵무기의 경우 미국은 그간 이라크 내에서 발견된 ‘알루미늄 튜브’가 우라늄 농축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사실은 지름 81㎜짜리 재래식 로켓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생화학무기의 경우엔 이라크가 과거 다량 제조했던 겨자탄 등 신경가스들을 폐기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를 내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반사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 명분’이 될지는 유엔 안보리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사찰단은 말했다.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 과학자를 가족과 함께 국외로 데려가 망명 조치 등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한 다음 고백을 받는 ‘심문 사찰’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랍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가 지적했다. 그는 “아랍 사회는 서구와 달리 ‘가족 중심’이 아니라 ‘씨족 중심’”이라면서 “가족 모두를 망명시킨다 해도 수백명이나 되는 (과학자의) 씨족이 볼모로 잡혀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누구도 사실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와 접촉한 한 사찰단원은 “만일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다면 사찰단원들에게는 공격 24시간 전쯤 통보가 올 것”이라며 “바그다드 내 이라크군 공항에 대기 중인 사찰단 전용기를 탈 가능성이 높지만 만일의 경우 육로 대피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그다드=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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