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戰雲]요르단의 이라크인들, 60만명 떠돌아

  • 입력 2003년 3월 17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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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서쪽 접경 요르단에는 3월 들어 이라크인 거주자가 60만명을 넘어섰다. 1년 전 15만명 선이던 것이 전쟁 위기와 함께 4배로 늘었다. 요르단 암만에서 만난 이라크인 중에는 의외로 미국의 이번 전쟁에 찬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담 후세인에 반대해 도피해온 망명객도 많다. 이들은 요르단에서 고달픈 생활을 접고 귀향하고 싶은 데다 무엇보다 요르단 내에 숨어든 이라크 비밀경찰로부터도 자유롭고 싶다고 했다.

▽전쟁에 찬성하는 이라크인〓“걸프전 때 군인이었습니다. 전쟁 하면 참호 속의 시체가 떠오릅니다. 이라크에 전쟁이 또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에 새로운 상황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희망적입니다. 미국은 걸프전 때 이라크 체제를 바꿨어야 했습니다.”

16일 암만 시내에서 만난 이라크인 작가 마제드 압델 아바스(48)는 “이번 전쟁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다면 나는 물론 요르단에 사는 많은 이라크인들이 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암만의 이라크인들은 구직자가 대부분이지만 후세인 체제를 거부한 예술가와 지식인도 상당수”라고 주장했다.

▽요르단 내의 이라크 비밀경찰〓이라크 출신 구직자들은 암만 시내 모다라즈 루마니(로마 원형극장 유적) 바로 옆의 하쉬미야 광장에 모여 일자리 소식을 주고받는다. 이라크에서 온 편지를 나눠주는 운전사 칼리 주라드(43·이라크 남부 바스라 출신)는 “전쟁 걱정 때문에 편지 받아보는 사람들마다 표정이 어둡다”고 말했다.

하쉬미야 광장은 이라크인들로 북적거리지만 정치 이야기는 함부로 할 수 없다. 로이터 통신의 와파 아므르 기자는 “요르단 내에도 이라크 비밀경찰인 무카라바트가 있다”며 “쉬비르 카림이라는 사람은 하쉬미야 광장에서 후세인 대통령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다가 현장에서 얻어맞았다”고 말했다.

BBC 라디오방송의 줄리앙 오 핼로란 기자는 “전직 이라크 출신 언론인이 암만에서 이라크 정보원들에게 납치돼 국경 쪽에서 처형된 일도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 암만 하쉬미야 광장 한쪽에서 이라크로부터 배달된 편지를 나눠주는 칼리 주라드(왼쪽). 이라크인들이 북적거리는 이 광장에는 이라크 정보기관원들도 적지 않다. -암만=권기태특파원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기다리는 망명 대기자들〓암만 시내 틀라 알 알리 거리의 이븐 알히뎀 병원 근처에 자리잡은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는 많은 이라크인들이 정식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드나든다. 지난해까지 1900명이 이곳에서 난민 지위를 얻었다.

15일 이곳에서 만난 한 이라크 여성은 자기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는 “아이 3명을 데리고 나와 캐나다로 가기를 원하고 있다”며 “지난해 봄 난민 지위를 얻은 뒤 캐나다에서 온 관리들을 만나 이주 신청서류를 넘겨줬지만 1년째 아무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UNHCR 사무소를 찾은 한 이라크 남성은 “미국 이주 허가가 떨어지기를 1년반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하쉬미야 광장 쪽으로 나갔다가 이라크 정보기관원들이 동행을 요구하기에 소리를 지르며 빠져나온 뒤로는 절대 그쪽으론 가지 않는다”며 “우리에게는 요르단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UNHCR 직원 페터 케슬러는 “위험에 빠진 이라크인들을 받아주는 국가가 거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9·11테러 이후 이라크인들의 이주 신청 허가는 대단히 어렵게 됐다”며 “이곳의 이라크인들은 림보(limbo·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암만=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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