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미사일 우릴 비켜갈 겁니다＂

《3000여명이나 된다는 북한 노동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쿠웨이트 전역에 걸쳐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폐차장과 쓰레기장이 모여 있는 자흐라. 이곳은 쿠웨이트에서는 이라크 국경과 가장 가까운 사막 도시다. 이곳에서 북한 노동자를 봤다는 교민들의 전언에 따라 이 일대에서 수소문한 결과 알라미아 건설회사에서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3일 오후 이 공장을 찾았을 때 공장 경비원은 취재진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집트인인 공장 감독관 마키씨는 ‘미스터 김’을 전화로 호출했고 김일성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단 30대 중반의 ‘미스터 김’이 나타났다. 김씨는 머뭇거리며 기자의 질문에 몇 마디를 해줬다. 여기서는 80명이 일하고 숙식을 함께하며 보통 한 번 오면 3년씩 머무른다는 것. 주로 하는 일은 막노동. 아침 6시반에 일을 시작, 오후 3시반에 마친다. 나중에 만난 이 공장 매니저는 북한 사람들의 일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고 흡족해 했다.

21일 이라크가 쏜 미사일 한 발이 이 공장의 20㎞ 북쪽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 공장은 전란의 와중에도 조업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불안하지 않은가.

“어떤 단체든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쿠웨이트에 진출한 현대건설과 SK건설 등 한국 회사들이 인도인과 파키스탄인 등 현지 근로자들을 모두 자사 부담으로 귀국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어떻게 생활하는가.

“조선 사람은 어딜 가도 조선식으로 생활한다.”

이들은 엄격히 단체생활을 하며 이곳 휴일인 금요일에도 단체 외출한다. 97년경 북한 노동자 한 명이 한국대사관을 통해 망명했다. 최근에도 한국대사관에 망명의사를 밝힌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한국대사관측은 밝혔다.

―고향 생각나지 않는가.

“거의 일주일마다 사람들이 교대하기 때문에 인편에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북한 노동자들은 평양에서 베이징(北京)을 거쳐 쿠웨이트로 들어오는데 중국항공의 운항이 중단돼 개전 이후에는 입출국이 막혔다.

―임금은 얼마나 받고 있는가.

“돈은 회사에 지불한다.”

이들은 북한회사인 수도건설 소속. 쿠웨이트에는 이 회사 외에도 남강 광복 유경 등 모두 4개 북한 회사가 쿠웨이트 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인력을 공급하고 있으며 임금을 일괄 수령한다.

김씨의 직책은 영어 통역 및 공사 안전 담당. ‘조국’에서 영어를 배웠다는 그는 “나이 들어 배워서 영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노동자를 보고 싶다는 요청에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 뒤 사라졌다. 3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들의 숙소로 직접 찾아가자 숙소 출입문 위에 걸린 ‘21세기 위대한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 양옆으로는 ‘결사 뭉쳐’와 ‘결사 관철’이 걸려 있었다. 쿠웨이트 사막 한가운데서 만나는 북한의 선동구호는 더욱 낯설었다.

‘이광일’이라고 소개한 50대의 감독책임자가 나왔다. 선글라스를 쓴 이씨는 취재를 가로막으면서 “이러지말고 통일된 뒤 만나자”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서울에서 만날까, 평양에서 만날까”라고 물으면서 “그러려면 미국 놈들부터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와 미국이 싸우는 것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면서 ‘그래도 여기는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미사일이 우리 머리 위로는 안 떨어진다”고 말했다.

북한은 쿠웨이트와 2001년 4월에 수교했으며 시리아 주재 김형준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쿠웨이트=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