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간) 요르단 수도 암만의 인터컨티넨탈호텔에 설치된 외신기자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요르단 언론인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미국이 지금처럼 세계 여론을 의식한 전쟁을 벌일 경우 충분히 대비한 이라크와 교착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시간에 몰린 미국이 ‘결정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 결정적인 선택은 바그다드의 발전시설 폭격이라고 했다.
▽단수(斷水)의 공포=암만에는 “미군이 며칠 안에 바그다드의 발전시설을 폭격할 것”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발전시설 폭격은 단전 단수를 뜻한다. 이런 말이 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그다드 시내의 전신전화국 폭격.
미군은 지난달 28일 알루이야 아다미야 등 4개 전신전화국을 폭격해 바그다드 내부 및 외부로의 통신을 차단시켰다. 1991년 걸프전 때도 미군은 ‘통신 차단→방송시설 폭격으로 정보 차단→발전시설 폭격으로 전기와 물 차단’의 수순을 밟았다는 것.
언제부턴가 피란 온 이라크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 암만 시내 중심가의 사하아시미아 광장. 이 광장에서 만난 아부 아메드는 “전화를 통해 바그다드 사정이 알려지면서 세계 여론이 나빠지니까 전화국부터 쳤다”며 “친지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알리 라마드라는 노인은 “전화가 불통되는 바람에 여러 친지 집에 분산시켜 놓은 자식들을 일일이 돌아보는 게 바그다드 사람들의 일과”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무서운 것은 물 공급이 중단된다는 점”이라고 했다. 바그다드 주민들이 △식량은 4월 말까지 버틸 만큼 비축해 놓았고 △방송과 전기가 끊어지는 것까지는 견딜 수 있으나 △단수가 되면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딜레마=문제는 미국이 국제 여론으로부터 ‘비인도적인 만행’으로 비난받을 단전 단수까지 갈 수 있느냐이다. 바그다드의 민간인 피해가 알 자지라TV, 아부다비방송 등 아랍권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인도적인 전쟁’을 하기엔 시간이 이라크 편이다. 지금처럼 이라크의 내부 동요 없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모르는 적과 싸울 경우 전쟁은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이라크 여성과 결혼한 이영철 현대건설 바그다드 지사장은 “4월 하순만 돼도 이라크의 기온은 섭씨 50도에 육박한다. 이라크 군인은 몰라도 미군은 전쟁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군이 발전시설을 친다면, 그 시기는 4월 중순 이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암만=박제균 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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