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지구촌]<4>갈라선 유럽의 앞날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02분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세계를 이끌어온 양대 축인 ‘미국-유럽’ 축과 ‘유럽-유럽’ 축이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치명상을 입었다. 유럽-유럽 축은 유럽연합(EU)으로 대변되는 전 유럽의 통합운동을 의미한다.

미국-유럽 축의 상징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아프가니스탄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멀리서 미국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런가 하면 유럽-유럽 축은 유럽통합 운동 50년 사상 처음 이라크전 찬반여부를 둘러싸고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싸웠다.

이제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이라크전쟁으로 말미암은 양대 축의 대분열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연재물 목록▼

- <3>상처입은 유엔의 위상
- <2>고민 깊어가는 아랍권
- <1>'유일강국' 재확인…"미국이 세계다"

일단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론가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10일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대 이라크 채권 포기를 요구하면서 “반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바로 다음날 프랑스 독일 러시아 정상들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뭉쳤다. 미국의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반전축이었던 3국의 결속 또한 단단해질 것이라는 게 유럽 언론의 분석이다.

이들의 결속은 또 다른 파장을 낳는다. 유럽통합의 양대 기관차인 프랑스와 독일의 밀착, 여기에 러시아까지 가세하는 것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쟁 전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등 유럽 8개국이 기습적으로 이라크전 지지를 선언한 것도 내면적으로는 프랑스와 독일의 과도한 밀착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유럽, 유럽-유럽 축은 하나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주목되는 것은 영국의 역할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전쟁 승리로 ‘지분’을 확보한 뒤에도 끊임없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전화 또는 대면 정상회담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전쟁 발발 전후로 영국 내에서는 “블레어 총리가 영국의 유럽 내 위치를 망각한 채 너무 나갔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영국이 미국-유럽 축의 중재를 통해 결과적으로 유럽-유럽 축의 분열을 봉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힘을 앞세우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유럽은 흔들리고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게 유럽 전문가들의 견해다. EU 15개국 국방비의 3배를 국방비로 쏟아 붓는 미국의 입김은 유럽에서 태풍으로 바뀐다.

EU 정상회의가 열릴 때마다 유럽 자체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어떤 나라도 선뜻 돈을 내려하지 않는 게 유럽의 현실이다. 그만큼 유럽은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쪼개질 수밖에 없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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