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조지.’
자연이 인류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로 불리는 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이곳에 사는 핀타거북의 이름이 조지다.
조지는 핀타거북의 마지막 자손이다. 조지가 죽으면 핀타거북은 멸종한다. 생물학자들은 ‘신부’를 중매하는 사람에게 상금도 걸어보고, 유전자(DNA) 테스트로 찾은 유사종(種)의 암컷과 신방도 차려줘 봤지만 조지의 ‘무관심’으로 멸종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갈라파고스제도 내의 또 다른 섬인 이사벨라에서는 ‘염소 박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바퀴벌레도 아닌 염소를 집단 학살하는 이유는 외래종인 염소가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동물의 알을 깨뜨리는 바람에 원종 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기 때문.
▽‘자연 박물관’의 위기=갈라파고스는 500만∼300만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산섬. 남미 대륙 서쪽 해안에서 1000km나 떨어져 있어 에콰도르에서 비행기로 꼬박 3시간을 가야 한다. 100여개의 섬 중 사람이 사는 섬은 4개. 총 인구는 1만8000여명이다.
바다 한가운데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곳은 지구상의 어디와도 다르게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갈라파고스에는 식물 600여종, 파충류 20여종, 조류 100여종, 어류 300여종, 포유류 10여종 등이 있다. 대부분이 이곳에만 있는 고유종이다.
사람이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5세기로 알려져 있으며, 1835년에 온 찰스 다윈은 이곳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1859년 역작 ‘종의 기원’을 썼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상주 인구는 많지 않았다. 2차대전 중 에콰도르는 이곳의 발트라섬을 미군 기지로 내줬다. 전후에 에콰도르 정부는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주를 장려했다. 에콰도르 본토가 경제난에 시달리자 관광과 고래잡이 등으로 그나마 수입이 나은 갈라파고스에 사람이 몰렸다. 1970년대 말 이후 20년간 매년 인구가 8%씩 늘었다.
이에 따라 외부에 개방돼 버린 갈라파고스는 위기를 맞게 됐다. 지구상에서 오직 이곳에만 유일한 자연 유산, 수백만년간에 걸친 생물 역사의 흔적이 사라질지 모른다.
▽‘갈라파고스를 보존하라’=1959년 에콰도르 정부는 섬 면적의 97%에 해당하는 부분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998에는 갈라파고스 특별법이 제정됐으며, 섬을 둘러싼 바다가 ‘해양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해양보호지역과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둘 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이다.
갈라파고스 보존 활동은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이 조정하고 총괄한다. 1959년 설립된 국제 단체인 찰스다윈재단은 에콰도르 정부의 ‘공식 파트너’다.
찰스다윈재단의 2002년 결산 보고서를 보면 ‘수입’ 항목에 미국 정부, 영국 정부, 에콰도르 정부, 프랑크푸르트 동물학회, 유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보인다. 영국 핀란드 네덜란드 등에서 갈라파고스 연구와 보존 활동을 하는 단체들은 ‘갈라파고스의 친구들’이라는 국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생물학 연구 활동도 글로벌하다. 3월 초 산타크루스섬 인근의 작은 섬에서 10여명 규모의 연구팀을 만날 수 있었다. 바다사자에게 건강 체크를 위한 센서를 삽입하는 작업에 미국과 멕시코 대학의 공동연구팀, 갈라파고스 국립공원팀, 찰스다윈재단의 ‘리서치 스테이션팀’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에서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연구 주제는 아무래도 유입종 동식물에 대한 것이 많다. 리서치 스테이션 식물팀에서 일하는 모니카 노리다는 갈라파고스를 ‘점령’한 서남아시아 유입종 식물인 ‘모라’를 없애기 위해 연구 중이다. 쿠바 출신의 곤충학자 라자로 로그 알벨로도 원종 식물을 무자비하게 먹어치우는 유입종 개미들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갈라파고스 특별법=1998년 갈라파고스 특별법이 제정됐다. 갈라파고스 보존 활동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별법은 크게 4가지 분야를 규제한다. 인구 이주, 어류 남획, 유입종 생물, 관광. 이 중 이주 관련 정책만이 본격 시행 중이고 나머지는 지난해 11월에야 시행 세칙이 마련됐다.
이주정책의 목적은 인구 유입의 억제. 갈라파고스 주민은 에콰도르 주민증 외에 갈라파고스 주민증을 따로 발급받는다. 갈라파고스 주민이 아니면 섬에 들어갈 때 일종의 비자를 받아야 한다. 외국인은 100달러를 내면 3개월짜리 방문 비자를 받을 수 있다. 갈라파고스 주민증(영주권 자격증)을 받으려면 부모가 갈라파고스 주민이고 본인은 갈라파고스에서 태어나야 한다. 영주권자는 아니지만 찰스다윈재단 직원 등 장기간 머물 필요가 있는 사람은 장기 거주증을 받을 수 있다. 영주권자가 보증을 서고 120달러의 보증금을 내야 한다.
갈라파고스에 관광용으로 들어올 수 있는 허가를 가진 배는 모두 80척. 특별법 제정 이후 5년간 한 척도 늘지 않았다.
갈라파고스 제도=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주민생계-환경보존 共生의 길 찾아야"▼
이반 모릴로 빌라레알 에콰도르 환경부 차관은 환경교육과 생물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부터 환경단체에서 활동했고, 12년간 국립대학에서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올 1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입각했다.
그는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에 갈라파고스로의 대규모 인구 유입을 유발한 과거사를 안타까워했다. ‘정치적인 이유’가 ‘보전해야 할 가치’를 우선했기 때문.
에콰도르에서 환경부는 생긴 지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경제개발 등을 위한 국가정책과 환경보전이라는 이슈는 상충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정부 부처 중 ‘미운 오리’다.
빌라레알 차관은 “개발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조화를 찾아내는 것이 환경부의 목표”라고 했다. 환경을 지키는 것이 주민들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으면 결코 보전되지 않는다는 것. 주민들의 생계유지가 안 되는 상황에서는 남획과 남벌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외에도 에콰도르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보호 구역이 31곳이나 있다. 사막화가 진행되는 아마존 지역을 재산림화하는 20년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그는 “아마존 등의 환경보전은 한 국가만의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루과이 칠레 브라질 등과 수시로 협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콰도르의 환경 활동과 관련해 한국은 교류가 거의 없는 국가 중 하나”라며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키토=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쓰레기 매립빼곤 처리시설 없어 골치"▼
갈라파고스 제도의 수도는 산크리스토발섬에 있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섬은 산타크루스섬이다. 산타크루스의 알프레도 오르티즈 코보스 시장은 2000년 8월 취임했다.
환경문제에 관해 그가 맨 먼저 꺼낸 이슈는 식수, 생활용수, 하수도, 쓰레기 처리.
산타크루스는 섬에 단물이 없어 식수를 전량 육지에서 수입해 온다. 시는 올 6월부터 스페인 기업과 함께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쓰레기도 말끔히 수거는 하지만 한곳에 매립할 뿐 별다른 처리시설이 없다. 코보스 시장은 “과학적인 쓰레기 처리 시설을 만드는 자금을 유럽에서 지원받기 위해 접촉 중”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주민의 편의를 위한 정책은 찰스다윈재단이나 국립공원의 보존 활동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담수화 공장도 결정되기까지 진통이 있었다. 공원의 일부를 통과하는 도로를 내달라고 주민들이 요구했지만 국립공원측의 반대로 실패한 적도 있다.
코보스 시장은 이곳을 ‘진정한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 재임 중 목표라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관광객은 발트라 공항에서 바로 대형 관광회사들이 운영하는 호화 선박으로 이동해 배에서 숙박을 하며 관광한다. 관광객이 많아도 정작 섬에서 쓰고 가는 돈은 별로 없다.
그는 “환경의 보전과 지역의 발전, 주민의 수입이라는 목표들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라파고스 제도=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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