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월드 워치]죽음 딛고 핀 ‘戰場속 사랑’

  • 입력 2004년 5월 31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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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이라크 바그다드 교외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피살된 일본인 자유기고가 하시다 신스케(橋田信介·61)는 전쟁통에 실명한 이라크 소년을 돕기 위해 바그다드로 갔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시다씨는 베트남전쟁 이래 30여년간 캄보디아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을 누벼온 전쟁사진 전문기자. 그는 올해 3월 미군과 저항세력이 격전을 벌이던 팔루자를 취재하다 만난 이라크인에게서 “미군 공습으로 아들의 왼쪽 눈에 유리 파편이 박혀 실명했다”는 말을 듣고 소년을 돕기로 했다. 소년의 이름은 모하메드(10).

귀국 후 동분서주한 끝에 치료비 지원 약속과 수술 병원 물색까지 마친 그는 소년을 일본으로 데려오기 위해 다시 이라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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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인 오가와 고타로(小川功太郞·33)와 함께 일본 자위대가 주둔 중인 사마와 지역을 취재한 뒤 소년을 데려오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하메드와 요르단 암만으로 떠나기로 약속한 사흘 전 피살되고 말았다.

당시 하시다씨의 차를 몰았던 이라크인 운전사는 “그에게 ‘저녁에는 위험하다’며 바그다드행을 하루 미루자고 했지만 ‘아이를 데려갈 약속이 정해져 있어 안 된다’며 서둘렀다”고 전했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그가 살던 시즈오카(靜岡)현 누마즈(沼津) 로터리클럽 회원들과 유족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달 중 모하메드군을 일본에 데려와 수술해 주기로 해 사후에나마 마지막 꿈이 이루어지게 됐다.

하시다씨를 ‘할아버지’로 부르며 따랐던 모하메드군은 30일 일본 교도통신 바그다드지국에 아버지와 함께 찾아와 “왜 그런 분이 죽어야 하느냐”며 흐느꼈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 가 눈을 고치게 되면 할아버지 묘소에 장미 한 송이를 바치고 코란 한 구절을 낭송해 드리겠다”며 울먹였다. 평생 전장을 누벼온 하시다씨는 평소 “목숨이란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해 왔다고 한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휘말려 빛을 잃은 소년에게 광명을 찾아주고 죽게 될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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