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클라크 내무장관이 밝힌 체포 이유는 “그들이 영국에 있으면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설명이었다. 이들이 범죄를 저질러 체포된 게 아니기 때문에 체포 사유는 군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이슬람 젊은이들에게 폭력을 선동하는 설교를 했을 것이라는 짐작만이 가능할 뿐이다.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인권단체들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영국의 전통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영국은 그동안 ‘발언의 자유’에 관해서는 관대했다. ‘성전 참여’를 주장하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설교를 방치해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런던이 아니라 런더니스탄”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까지 했다. ‘런더니스탄’은 런던에 ‘국가’를 뜻하는 ‘스탄’을 붙여 만든 말.
영국 정부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물론 7·7 런던테러 발생 직후. 토니 블레어 총리는 최근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면서 강력한 대응을 강조했다. “급진적인 설교를 하는 이슬람 사원을 폐쇄하고 성직자는 내쫓아야 한다”는 것.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범죄의 소지를 발본색원하라는 지시였다.
이 같은 상황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시킨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이 영화는 미래 사회가 범죄에 대응하는 방식을 소재로 한 SF 영화. 영화에서 사법당국은 예지자를 동원해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미리 파악한 뒤 ‘미래의 범인’을 범죄 개시 이전에 체포함으로써 범죄 자체를 아예 차단해 버린다.
프랑스도 영국과 비슷한 조치에 나섰다. 프랑스 사법당국은 런던테러 직후 이슬람 성직자 2명을 추방했으며 이달 말까지 20여 명을 추가로 내쫓을 계획이다. 프랑스 내무부 관계자는 “반(反)서방 감정에 불붙이는 사람은 프랑스 국민이라도 추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995년 7∼10월 파리에서 잇따라 발생한 테러로 8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치는 피해를 본 바 있는 프랑스로서도 이슬람 과격파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것.
이에 대한 비판 역시 거세다. ‘인권의 발상지’라고 자찬하는 프랑스가 스스로 인권을 부정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껴안는다고 자부하던 프랑스의 ‘다문화주의’와 ‘톨레랑스(관용)’는 어디로 갔느냐는 비난이다.
리옹의 한 이슬람교도는 라디오 방송에서 “그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내쫓는가”라고 물었다. “이슬람이라는 것이 죄인가? 이슬람은 바퀴벌레가 아니다”라는 게 그의 호소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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