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월드워치]파리 북동부 ‘분노’가 불탄다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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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북동쪽 센생드니 지역 주민들은 3일 아침에도 불에 탄 차량이 거리에 나뒹구는 것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벌써 일주일째 지속되고 있는 소요 사태 때문이다. 시위대는 이제 차량뿐 아니라 건물에도 불을 지르고 상가를 파괴하는 등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이날 새벽에는 시위대가 올네수부아의 한 자동차 매장에 있던 전시 차량에 불을 질렀다. 이 지역 파출소도 한때 시위대에 포위당했다. 센생드니 경찰서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상가에선 시위대의 습격으로 가게가 부서지고 상인 3명이 다쳤다. 취재 중이던 프랑스 2TV 차량도 시위대에 빼앗긴 뒤 불에 탔다.

지난달 27일 클리시수부아에서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하면서 촉발된 시위는 점점 인종, 종교 차별 문제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에 가려진 채 곪을 만큼 곪은 프랑스 사회의 상처가 터져 버린 것.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은 센생드니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면 금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곳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 우범 지역으로 알려져 프랑스 사람들이 대낮에도 가기를 꺼린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다. 마땅한 직업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가난을 대물림하면서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주류 프랑스인으로부터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받는다. 대학 졸업자 전체 실업률이 5%에 불과하지만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대졸자의 실업률은 26.5%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대부분 이슬람 신도인 이들은 종교 때문에 또 한번 차별을 받는다고 불평한다. 2일 프랑스 TV에 나온 무슬림 청년 사덱(31) 씨는 “이슬람식 이름을 가지고선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내뱉었다. 이 와중에 지난달 30일 경찰이 이슬람 사원에 최루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소요가 확산됐다.

이번 소요 사태의 불똥은 정치권으로도 옮아붙었다. 시위대를 ‘거리의 불량배’라고 불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침묵을 지키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2일 “공평한 기회 부여를 위해 정부가 노력을 더 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3일 새벽에는 파리 서쪽 지역으로까지 시위가 확산되는 등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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