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주인은 양측 모두에 상대방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며칠 뒤 한 기자가 고이즈미 총리에게 “모리 씨도 같은 날 요정에 들렀다는데 알았느냐”고 묻자 고이즈미 총리는 깜짝 놀라며 “그런 일이 있었나.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일본 요정의 ‘보안 의식’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나타내는 사례로 요즘 일본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얘기다.
전후 일본의 정치사에서 요정은 막후 정치의 무대로 활용돼 왔다. 파벌 보스들 간의 술자리 담판을 통해 내각과 당의 자리가 안배됐고, 정치자금을 은밀히 주고받는 창구로도 이용됐다.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체제가 정착된 1970, 80년대엔 국회에서 격렬히 다투다가도 공식 일정이 끝난 뒤 요정에서 타협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요정은 ‘밤의 국회대책위원회’나 다름없었다.
일본 정계 소식통은 유력 정치인들이 아카사카의 요정을 애용한 가장 큰 이유로 국회와 승용차로 5분 거리로 가까운 데다 철통같은 보안 때문에 대화 내용이 새 나갈 염려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기모노 차림의 여성 종업원들이 술시중을 들다가도 화제가 정치 현안으로 옮겨 갈 조짐이 보이면 알아서 자리를 피하고, 설령 듣더라도 발설하지 않는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는 것.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치 개혁이 일본 정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요정을 찾는 국회의원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한때 100곳을 넘던 아카사카 일대의 요정도 이에 비례해 줄어들었다.
거품경제 붕괴로 ‘눈먼 돈’이 줄어든 데다 ‘요정=담합’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의원들도 유권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히면서 1인당 10만 엔(약 100만 원) 정도인 비용도 부담스러워졌다.
요정의 단골이던 집권 자민당의 보스 급 정치인들이 고이즈미 정권 들어 급격히 영향력을 상실한 것도 요정의 쇠락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9·11 중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즈미 바람’에 힘입어 최연소 당선기록을 세운 자민당의 스기무라 다이조(杉村太藏·27) 의원은 당선이 확정되자 “의원이 됐으니 빨리 요정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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