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쟁력은 ‘덩치’=중국의 최고 경쟁력은 규모다. 이미 구매력환산(PPP) 소득 기준으로 전체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떠올랐다. 따라서 세계 투자가들에게는 투자의 ‘황금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 당연하다.
‘규모의 경제’는 고급 인재의 대량 배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국의 미래는 장밋빛 예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천재가 100만명에 한 명꼴로 태어난다고 가정할 경우 경영 과학 예술 문학 등 전 분야에 ‘천재’가 이론상 1300명을 넘어선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진석(劉晋碩)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유인 우주선을 띄울 정도로 과학기술이 앞서 있다. 상용화하지 못한 원천 기술력은 최고수준”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전반적인 교육시설 및 수준은 아직 선진국에 못 미치지만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등은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것이 중국의 이중적 구조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상하이(上海)에 세워진 중국-유럽연합(EU) 경영대학원은 세계 100대 경영학교에 포함된다. 한국이나 일본에는 100위권에 진입한 학교가 없다.
초기 개발단계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해외자본 유치에 나선 것도 잘 알려진 중국 투자 붐을 가능케 했다.
산업자원부 김종갑(金鍾甲) 차관보는 중국 단둥(丹東)을 방문했을 때 현지 공무원들이 밤 12시가 다 되도록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 로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일이 있다. 그는 “중국정부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기업 유치에만 정성을 쏟았지만 지금은 수익을 낼 때까지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의 그늘=그러나 화려한 중국 경제의 이면에는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후진성이 잠복한 것도 사실이다. 또 관료가 필요 이상의 권한을 휘두르는 점은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일본 관광성은 2001년 상하이에서 개최한 회의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던 중국 여행사들이 모두 불참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여행사를 상대로 일본관광 상품안내를 위한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당국에 사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하이 여유국(旅遊局)이 같은 시간에 ‘전체 회의’를 소집해 버렸던 것이다. 일본 당국은 오히려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사과공문을 보내야 했다. 유 수석연구원은 “관료제의 불확실성은 중국 경제의 불안한 미래와 그 리스크를 상징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중국에서 기업 인수합병(M&A) 회사를 운영하는 상하이애셋 전인규(全寅珪) 사장도 ‘게임의 룰’ 부족을 호소했다. 그는 “공무원이 국영기업을 팔면서 예정 가격보다 금액을 낮춰준 뒤 커미션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털어놓았다.
베이징 한국대사관에서 초대 법무협력관을 지낸 구본민(具本敏) 서울지방검찰청 부장은 “중국 투자자의 귀책사유로 합자계약이 깨졌는데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등 법과 제도의 전근대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법조계에서마저도 신뢰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중국 공산당의 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 문화혁명기(1966∼76)에 대학교육을 받은 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4세대 지도부가 경제 개방기에 교육을 받은 5세대 지도부에 권력을 넘겨주는 시점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 박두복(朴斗福) 교수는 “다원주의에 걸맞은 5세대 지도부가 2012년 또는 2017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등장하는 것이 중국이 민주화 및 법치주의 확립을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선택=중국과의 유대 강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국과 동반상승할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산업연구원(KIET) 김홍석(金弘錫) 부연구위원은 “한국이 아니라도 중국은 얼마든지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경제협력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며 “신흥시장의 한계를 따지기 이전에 중국시장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상은(鄭常恩)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에 힘입었지만 현재 진행 중인 건설 공사가 마무리되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한국의 수출이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기술 이전에 따른 부메랑 효과도 중국 경계론의 한 축이다. 중국 정부가 ‘이시장 환기술(以市場 換技術·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얻는다)’을 내세우며 한국의 투자 기업들에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어 조만간 양국간 기술력 차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조현준(趙顯埈) 중국팀장은 “중국에 대해 거대 시장을 제공하는 국가라는 시각만 있을 뿐 전제형 권력구조가 초래하는 비효율성은 가려져 있다”며 “중국이 진정한 ‘기회의 땅’인지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인맥-실력 갖춘 중국통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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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까지도 ‘중국 러시’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 해마다 중국 유학생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정부 내에선 ‘중국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민은 중국을 ‘21세기의 두려운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으나 승부의 시작인 ‘지피지기(知彼知己)’에서조차 밀리고 있는 것이다.
▽대중 외교 사령탑은 국장급?=외교통상부에서 북한 핵 문제나 대미 외교는 주로 차관보가 ‘현장사령탑’ 역할을 한다. 역대 차관보 중 북미국장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국 외교는 사실상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실무사령탑인 셈이다. 그나마 그 아태국장 자리마저도 그동안 일본통이 거의 독점해왔다. 최근에야 일본통과 중국통이 번갈아 하는 추세다.
한 중견 외교관은 “역대 외교부 장차관 중에도 미국 고위층과 ‘전화 외교’가 가능한 대미통은 많지만, 중국을 제대로 아는 고위직 외교관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외교부 내 미국통 중심의 ‘워싱턴 스쿨’, 일본통 중심의 ‘저팬 스쿨’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차이나 스쿨’은 제대로 형성조차 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 외교관은 전했다.
대중 외교의 최일선에 서 있는 외교부 사정이 이런 만큼 청와대나 다른 주요 부처에서 ‘중국통’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이런 현실은 “중국에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시(關係)’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한국 외교의 취약성’으로 연결되고 있다.
세종연구원 지역연구실의 이태환 박사는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정관재계 사람들의 위치와 위상도 급변한다”며 “국가적 차원에는 지중파(知中派)를 양성하고 중국 내 친한파를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양평섭 박사도 “한국도 일본처럼 중국 내 각종 정보와 인맥들을 통합해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중국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절실=정부는 지난해 중국 내 거점별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내용의 ‘중국 전문가 양성 계획안’을 마련해 발표했으나 “다른 지역과의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백지화됐다.
당초 이 계획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2008년까지 중국관련 박사 학위자 500명씩을 선발해 ‘박사 후 과정’을 지원한다는 것.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강준영 교수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중국의 성별 지역별 전문가를 키우고 있다”며 “우리도 서둘러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국내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해운 최민영 인사팀장도 “중국은 지역별로 기업 환경이 다르고 시장기회도 순식간에 찾아온다”며 “특정지역에 대한 연구가 기반이 되어야 중국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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