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에 반대한 유럽 3개국을 향해 지난해 봄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런 말을 던졌다.
그가 16일 콜린 파월의 후임으로 새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유럽 언론들은 이 발언을 일제히 인용했다. 라이스의 득세로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유럽간 양안(兩岸) 관계가 더욱 불편해질 것을 우려하는 것.
유럽의 우려는 파월의 퇴임을 지나칠 정도로 아쉬워하는 분위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 독일 일간 디 벨트는 “파월은 부시 행정부 안의 존 케리였다”고 논평했다. 베를리너 차이퉁은 “파월은 유럽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인물”이라며 아쉬워했다.
일부 유럽 언론들은 라이스의 장관 지명에 노골적으로 실망을 표시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유임과 라이스 보좌관의 부상은 유럽 지도자들에게 나쁜 소식”이라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스탐파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 동안 미국이 온건해지리라는 희망을 이제 접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은 이라크전쟁을 비롯한 국제 현안에서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교토의정서 이행, 이란 핵 문제 등 눈앞에 닥친 현안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파월은 유럽의 입장을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해는 하는 편이었다.
파월 장관은 지난주 초 “부시 대통령 2기의 주요 외교목표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유럽의 불편한 관계 해소”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다음 달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에 잇따라 참가할 예정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미국과 유럽의 가교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구상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블레어 총리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하는 유럽의 다자주의적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건파인 파월을 협상 창구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반면 라이스의 외교무대 전면 등장에 일부 전문가들은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파월은 외면했지만 라이스의 말은 귀담아 듣는다”며 “라이스는 현실주의자이며 동맹이 필요한 미국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라이스 보좌관이 유럽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파월에 비해 더 실질적이고 즉각적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친유럽적 정책’을 반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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