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부시 취임식 참석 의원들에게

  • 입력 2005년 1월 12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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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식에 적지 않은 국내 정치인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을 통해 취임식 초청을 받은 여야 의원은 10명이지만 다른 채널을 통해 방미하는 의원들을 포함하면 수는 더 늘어날 것 같다.

4년 전인 2001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첫 취임식 때도 20여 명의 여야 의원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에선 한화갑(韓和甲) 이인제(李仁濟) 정대철(鄭大哲) 박상천(朴相千)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에선 김덕룡(金德龍) 박근혜(朴槿惠) 이부영(李富榮) 부총재가, 자민련에선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워싱턴을 찾았다.

그때 워싱턴 특파원이던 기자는 화려한 취임식의 막전막후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김종필 총재와 한화갑 최고위원은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부 장관 주최 만찬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잠시 만나 아들인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도록 해 달라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방미 의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이었다.

다른 의원들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와 대학에서 강연을 하거나,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 한미관계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이들 의원 중 누구도 부시 대통령이나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를 만나지는 못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운집하는 미 대통령 취임식의 외교 무대에서 그런 기회를 잡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사전 준비가 소홀했던 탓도 있다.

결국 대부분의 의원은 ‘부시 행정부와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당초 목표는 이루지 못한 채 취임식 견학만을 마치고 귀국해야 했다.

이번에 워싱턴에 가는 의원들도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똑같은 ‘낭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취임식보다는 다른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만 직접 확인하고 오더라도 커다란 소득일 것이다.

지난해 11월 칠레에서의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미 양국 정부는 양국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의 지인들이 전하는 부시 행정부 주변의 기류는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외교적 수사’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옹호하는 ‘우군(友軍)’이 미국 내에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가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이제 미국 측과 주요 현안에 관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할 수 있게 됐지만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 새해에는 이런 점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진솔한 토로를 들은 적이 있다.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의원들이 한미관계의 현주소에 대해 새롭게 눈뜨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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