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마칸 리포트]<4>시장의 프런티어들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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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서부대개발의 거점 도시인 청두, 충칭, 시안에 대형백화점과 고가 명품 매장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동부연안 대도시와 맞먹는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평일 밤 늦게까지 쇼핑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청두의 최대 번화가인 춘시로. 이 곳에만 외국계를 포함해 대형백화점 5개가 몰려 있다. 청두=원대연 기자
불야성
서부대개발의 거점 도시인 청두, 충칭, 시안에 대형백화점과 고가 명품 매장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동부연안 대도시와 맞먹는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평일 밤 늦게까지 쇼핑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청두의 최대 번화가인 춘시로. 이 곳에만 외국계를 포함해 대형백화점 5개가 몰려 있다. 청두=원대연 기자
《고비 사막 아래 옛 실크로드 중간 기착지 란저우(蘭州) 시의 바이안(百安)백화점 5층 전자제품 매장. 양문형 냉장고, 4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 최신 모델의 휴대전화 등 고급 제품을 찾는 고객들로 매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3만5800위안(약 450만 원)짜리 LCD TV는 도시 평균 근로자의 30개월치 급여에 해당한다. 그러나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과시를 좋아하는 서부인들의 문화적 배경도 있지만, 서부대개발 이후 빠르게 형성되고 있는 고가 제품 시장의 위력이 워낙 커 우리도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삼성전자 현지법인의 양밍(楊銘) 씨가 압축해 전하는 서부의 빠른 변화상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란저우 동부시장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사용 구두, 스타킹, 브래지어, 와이셔츠가 1묶음에 8∼80위안(1000∼1만 원)에 팔린다. 상인들과 흥정하느라 얼굴이 벌게진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싼 가격을 노리는 듯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중국 서부 시장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은 선진국 어느 시장보다도 뚜렷하다. 경제 성장 초기라 빈부격차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막대한 시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의 진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끈끈한 ‘관시(關係)’로 얽힌 폐쇄적인 유통 구조와 지역적 다양성도 한국 기업인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파트너와 유통망 확보가 성패를 좌우=서부 유통망의 가장 큰 특징은 몇몇 대형 유통업체가 품목별로 지역 전체 판매망을 장악하는 형태다.

란저우에서 의류 유통업을 하는 쑹바오룽(宋保榮·40·여) 씨는 “이런 사정 때문에 외부 기업이 자체 매장을 열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서부에 진출하려면 영향력이 큰 대리인과 유통업체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시안(西安)법인은 파트너를 잘못 골라 어려움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6년 현지 업체와 합작해 시안 일대에서 고속버스 여객사업을 시작했다. 20억 원을 투자했지만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로 경영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현지 파트너가 수익성 높은 노선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2년 버스 운행을 정지한 채 회사 청산 문제를 놓고 합작 파트너와 4년째 법정 다툼 중이다. 임광재 대우 현지법인 대표는 “파트너와 시장에 대한 사전 조사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지역 특성을 파악하라=삼성전자 서북지역 총판 책임자인 후원티(胡文悌·50) 총경리(사장)는 간쑤(甘肅) 성에서 손꼽히는 부자다. 1996년 삼성전자 제품 판매에 뛰어든 그는 2000년 1000만 위안(약 12억5000만 원)에서 지난해 4100만 위안(약 51억2500만 원)으로 판매 실적을 높였다. 성공 비결은 무료 배달과 애프터서비스. 배달 개념이 없어 고객이 대형 가전제품을 직접 집에까지 운송해야 하는 불편함에 착안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서비스가 서부에서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 된 셈이다.

매운 요리로 유명한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입안이 얼얼할 만큼 매운 치킨버거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상품 현지화의 대표적 사례다. 닭고기에 ‘샹라바오(香辣包)’라는 고추소스를 넣어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것. 그 덕분에 맥도널드 치킨버거는 현지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원료 확보의 용이성도 기업 성패의 주요 요건이다.

㈜라톤(LATON)코리아는 2003년 8월 광시좡족 자치구의 성도 난닝(南寧)에 255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곳의 풍부한 송진을 찾아 나선 것. 소나무에서 추출한 진액 송진으로 화학수지의 접착 원료인 ‘로진(ROSIN)’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올해 생산목표량은 1만5000 t. 대만 일본 등 10개국에 수출해 2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계획이다.

왕동규(王東圭·39) 현지법인 대표는 “낙후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송진을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들어왔는데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금호종합화훼유한공사가 1998년 11월 윈난(雲南) 성의 쿤밍(昆明)에 진출한 것은 기후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일조량이 풍부한 데다 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심지어 여름 또한 30도를 넘지 않는 현지 기후가 원예작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난해 7만 포기의 양란을 판매해 500만 위안(약 6억25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류를 이용하라=청두에서 가장 유명한 나이트클럽인 ‘바비클럽’. 흘러나오는 노래 3곡 중 한 곡은 박지윤 김현정 등 한국 가수들의 댄스 음악일 정도로 한류(韓流) 열풍이 강하다. 이런 한류 덕분에 서부에서 한국 제품의 인기는 미국산과 일본산 제품에 못지않다.

서부에서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은 한국 의류업체 ‘온앤온’. 이 회사의 니트 제품은 청두 왕푸징백화점에서 한 벌에 1188위안(약 14만8500원)에 팔리고 있다. 이곳 직장인의 한 달 평균 월급에 해당되는 가격이지만 베이징 점포의 월 총매출액과 비슷할 정도로 호황이다. 웨이리쥐안(26) 점장은 “흐린 청두의 날씨를 감안해 한국 드라마 주인공들이 즐겨 입는 밝고 경쾌한 색상의 제품으로 승부를 건 것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명품이 이미 휩쓸어 버린 동부와는 달리 모두에 미완의 시장인 서부는 한국 브랜드가 명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땅입니다.”

KOTRA 청두무역관 이영준(李英俊) 관장의 진단이다.

▼“깎아주고 얹어주고… 작년 600억원어치 팔았죠”▼

중다(中大)전기유통의 황핑(黃平·43·사진) 총경리(사장)는 란저우 전자 유통업계의 거물이다.

시내 중심가에 32층짜리 바이안백화점을 갖고 있으며 인근 시타이화(西太華)백화점과 베이징화롄(北京華聯)백화점에 대형 매장을 갖고 있다. 란저우 일대에 보유한 매장만도 연면적 4만5600평 규모.

서부 간쑤 성 란저우의 유통망을 장악한 그는 베이징 출신이다. 베이징과 난징(南京)의 전자업계에서 잘 나가는 청년 사업가였던 그를 란저우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서부대개발’이었다.

“1990년대 말까지 서부의 부자들은 남부나 동부로 가 쇼핑을 했습니다. 하지만 서부대개발로 부유층이 급격히 늘면서 동부나 남부가 아닌 현지에서 고가 제품 구입을 희망하는 구입 패턴이 형성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2003년 란저우로 옮긴 뒤 2년 남짓 만에 시장을 평정했다. 2004년 가전 분야에서만 4억8000만 위안(약 600억 원)어치를 팔았고 올해 예상 매출액은 5억4000만 위안(약 675억 원).

그의 유통망을 통해 제품을 팔려는 국내외 업체 관계자들로 방문객들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황 사장은 “브랜드, 가격 경쟁력, 품질 등 3가지 요건을 보고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브랜드가 확실하거나 가격 대비 품질이 탁월해야 받아준다는 설명이다.

그의 성공에는 제품을 보는 눈과 함께 마케팅 전략이 한몫했다.

황 사장은 “동부에서 1만 위안에 파는 제품을 이곳에서 1만1000위안으로 정한 뒤 1만200위안만 받고 800위안짜리 제품을 끼워줬다”고 말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할인 혜택에다 공짜 제품까지 덤으로 받는 셈. 서부의 백화점에서 아직 생소한 끼워주기와 할인 마케팅이 효과를 거뒀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

반병희 차장(팀장·국제부)

하종대 기자(사회부) 이호갑 기자(국제부)

이은우 기자(경제부) 이정은 기자(정치부)

원대연 기자(사진부) 김아연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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