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차기총리 확실시 아베의 시대]<上>거물 정치인 되기까지

  • 입력 2006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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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후임자를 뽑는 자민당 총재 경선이 27일 막이 올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현장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이날 사실상의 전국 순회유세에 들어갔고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하지만 총재 경선은 본게임에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벌써 김이 빠진 분위기다.

21일 아베 장관과 함께 유력한 총리 후보였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의 불출마 선언으로 아베 장관의 독주(獨走)라는 구도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아베 장관은 올해 52세.

자민당 총재 경선이 큰 이변 없이 끝나 그가 9월 하순 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된다면 최연소 총리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된다.

외가 쪽에 형제 총리를 배출한 집안의 역사에 조손(祖孫) 총리 탄생이라는 영예도 보태게 된다.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씨는 외상을 지냈다.

아베 장관은 내로라하는 정치 명문가의 후손치고는 늦깎이인 39세에 처음 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 후로도 10년 가까이 중앙정치무대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그가 불과 4, 5년 만에 총리 등극을 눈앞에 둔 거물 정치인으로 떠오르게 된 원동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두 차례의 북한 변수’였다.

▽스타 탄생의 순간=2002년 9월 17일 오전 11시경 평양 백화원초대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마주 앉은 고이즈미 총리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북한 측이 회담에 앞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 13명 가운데 8명이 이미 사망했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납치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김 위원장은 “오후에 이야기하자”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고이즈미 총리는 점심을 같이 먹자는 북한 측 제의도 거절한 채 참모들과 대책을 숙의했다. 그대로 북-일 평양선언에 서명을 하자니 국내 여론이 걱정이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아베 당시 관방부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서명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묵묵부답이었다.

오후 2시 재개된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예상을 뒤엎고 납치 문제를 순순히 사과했다.

하지만 ‘통 큰 사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려 한 김 위원장의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고 책임자의 입에서 납치 사실을 직접 확인한 일본인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대북(對北) 강경론이 전매특허=이런 후일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약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아베 장관은 이후로도 줄기차게 대북 강경론을 주장하며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2003년 9월에는 40대에 자민당의 공식 서열 2위인 간사장에 발탁돼 정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05년 10월에는 일본 내 모든 정보를 주무르고 매일 TV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관방장관에 취임해 가장 유리한 경선 고지를 차지했다.

기회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 4월 중순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아시아협력대화(NEACD)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에 모였다.

6자회담 재개 여부를 놓고 세계의 이목이 도쿄에 집중된 시기에 아베 장관은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 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DNA 감정 결과를 전격 발표했다. 절묘한 시기 선택으로 양국문제였던 납치사건이 국제 이슈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이어 5일 새벽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그의 독주에 훨훨 날개를 달아 줬다.

▽외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우경화 유전자=아베 장관의 강경 우파성향은 북한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2년 5월 와세다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그는 “원자폭탄이라도 소형이라면 헌법상 문제가 없다”는 섬뜩한 말을 하기도 했다.

개헌을 통해 자위대의 교전(交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그의 지론이다. 올해 2월 17일 한 강연에서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은 점령하에 만들어졌다. 스스로의 손으로 써야 한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 50년이 넘게 미뤄져 왔다. 우리 시대의 숙제를 정리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성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베 장관의 어머니는 2003년 11월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 “정책은 외할아버지를 닮고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썼다.

그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는 연합군 점령 때 만들어진 제도를 바꾸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소명으로 여겼던 인물. 특히 헌법과 미일안보조약 개정은 그의 양대 숙원이었다.

아베 장관은 기시 전 총리의 이런 정책유전자는 물론 정서도 물려받았다.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어렸을 때부터 ‘네 외할아버지는 A급 전범 용의자가 아닌가’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그 반발로 보수라는 말에 더욱 깊게 친밀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일본총리 선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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