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스원 호위하며 본 하늘, 무섭도록 고요”
에어포스원 “속도내라” 재촉… 전투기의 호위 그때가 최초
“착륙 거부 비행기 요격하라”… 명령은 받았지만 없길 기도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텍사스 공군 내셔널가드(주방위군) 147정찰비행단 소속 롤란도 아길라 중령은 휴스턴 엘링턴필드 기지에서 TV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당장 멕시코 만으로 날아가 “항공기를 호위하라”는 명령이었다. 호위해야 할 항공기는 대통령이 탑승한 에어포스원이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가 테러 소식을 듣고 워싱턴으로 귀환하려다가 에어포스원도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인근 멕시코 만으로 기수를 돌리던 중이었다.
아길라 중령은 F-16 전투기를 몰고 멕시코 만으로 급히 날아갔다. 텍사스에서 가까운 루이지애나 박스데일 공군기지까지 에어포스원을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미 역사상 에어포스원이 전투기의 호위를 받은 실제상황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의 전투기는 공중 급유를 받아가며 2시간 반 만에 에어포스원을 무사히 박스데일에 착륙시켰다.
8월 30일 메릴랜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내셔널가드 9·11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9·11테러 당시 워싱턴 뉴욕 영공을 지켰던 조종사들이 직접 나와 F-16 전투기의 출격을 재연하고 기자들과 당시의 기억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아길라 중령은 “앞쪽에서 호위하는 동안 에어포스원으로부터 ‘더 속도를 내라’는 지시를 수차례 받았다”며 “부시 대통령 일행은 박스데일 공군기지에 착륙하자마자 곧바로 대국민 연설 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연방항공국(FAA)이 미 전역에 항공기 운항 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하늘에 떠 있는 비전투 항공기는 에어포스원밖에 없었다”며 “당시 전투기에서 본 하늘은 무섭도록 고요했다”고 술회했다.
9·11 때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대기하고 있던 워싱턴 내셔널가드 133비행단 소속 마크 새스빌 대령에게는 펜타곤(국방부 청사)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F-16 전투기는 펜타곤 폭격 후 가장 먼저 워싱턴 상공에 출격한 항공기였다. 그는 “공중에 떠 있는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하고 이를 거부하는 항공기는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요격해야 할 항공기가 없기만을 바랐다”고 말했다.
델라웨어 내셔널가드 합동참모본부장을 맡고 있는 캐럴 티먼스 준장(여)은 9·11 당일 민간 항공기인 아메리카에어라인 조종사로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셔널가드 군인은 일 년에 일정 기간 소집 훈련을 받고 나머지 기간에는 생업에 종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집 기간이 아닌 동안에는 민간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한다.
티먼스 준장은 “활주로를 따라 막 이륙하려는 순간 갑자기 관제탑으로부터 대기 지시가 내려오더니 중지 명령으로 바뀌었다”며 “관제탑도 월드트레이드센터 폭발이 테러 공격인지 단순 사고인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조종사들은 “9·11의 교훈은 미국이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며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지만 테러대응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군인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법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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