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길고 깊은 ‘우애의 과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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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50년, 교류 2000년 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일본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히다카 시의 ‘고마 신사’에는 고구려 조상들을 모셨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힌 ‘고려왕묘’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히다카=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일본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히다카 시의 ‘고마 신사’에는 고구려 조상들을 모셨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힌 ‘고려왕묘’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히다카=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일본 도쿄에서 서북쪽으로 70km 떨어진 사이타마(埼玉) 현 히다카(日高) 시에 가면 고려천, 고려산, 고려치(峙·고개), 고려역, 고려소학교 등 도처에 ‘고려(高麗·일본어로 고마)’로 시작하는 지명이나 시설이 있다. 히다카 시 역시 통폐합 전 ‘고려군’으로 불렸다. 여기서 고려란 ‘고구려’를 뜻한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인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평양성이 무너지면서 나라를 잃게 된 고구려 유민들이 대거 건너와 뿌리를 내린 곳이기 때문이다. 유민 1대(代)를 시작으로 장자 상속으로 무려 60대를 이어 온 가족이 있으니 ‘고구려 신사’(이하 고마 신사)를 지키고 있는 궁사(宮司·일본 신사를 운영하는 책임자) 고마 후미야스 씨(49·사진)다.

5월 신사에서 만난 고마 궁사는 피는 속일 수 없는지 언뜻 봐도 선 굵은 외모가 전형적인 일본인보다는 한국인과 가깝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임진왜란 때 3형제가 뿔뿔이 흩어져 두 명은 전사하고 장손만 숨어 살아남아 겨우 대를 이을 수 있었다. 32대 할아버지는 ‘절대 전쟁에 나가거나 나랏일에 끼어들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후 자손들은 종교인으로 이곳 신사를 지키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알고 살았다.”

한국의 생활한복과 비슷한 궁사 유니폼에 왼쪽 손에는 최첨단 명품 시계를 찬 그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연속성이 느껴졌다. “한일 관계를 언뜻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뿌리가 고대로부터 깊다는 것은 우리 집안이 증거이다. 한일 근대사에는 전쟁도 있었고 지배와 피지배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한일 교류 2000년 역사에는 좋은 시절이 더 많았다.”

그에게선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일본에서 겪어 온 차별이나 소외라는 말 대신 “나의 뿌리는 한국이지만 내가 크고 자란 곳은 일본이다. 내 조국은 둘”이라는 말이 나왔다. “옛 조상들처럼 한국과 일본이 다시 새로운 이웃으로서의 인연을 이어 갔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22일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을 기념해 한일 관계를 교류의 역사로 보는 ‘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시리즈를 기획했다. “동아시아의 미래는 한일 두 나라가 고대로부터 쌓았던 인연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재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미국의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의 저자)의 말을 새기며 연재를 시작한다.

히다카=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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