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낮 12시경 강원 강릉시 세인트존스호텔에서 만난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57)는 이 호텔의 식당 한쪽에 마련된 회의실 대신 근처의 라운지에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핀란드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강릉을 찾은 시필레 총리는 선수들이 입는 점퍼를 입고 있었다. 기자가 “핀란드팀 감독 같다”고 말하자 그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맙다”고 했다. 보좌진과 경호원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라운지 소파에 앉은 시필레 총리는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북유럽 특유의 개방적인 문화와 기업인 출신의 실용성이 느껴졌다.
시필레 총리는 슈퍼셀(클래시오브클랜 제작사)과 로비오(앵그리버드 제작사) 같은 핀란드 스타트업의 성장과 개혁 추진 상황을 자신감 있게 설명했다.》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의 몰락’ 그리고 이어진 ‘스타트업 활성화’를 중심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핀란드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이 경쟁력을 잃어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된 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실업률이 크게 올랐고, 경제도 동력을 잃었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잃어버린 시대’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개혁으로 이제는 확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를 기록했고, 당분간 이 정도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스타트업이 크게 늘었고(현재 핀란드에서는 2370개의 스타트업이 활동 중), 기존 기업들도 성장하고 있어 이제는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이 잘나가던 시절과 비슷한 수의 엔지니어들이 핀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참고로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은 경쟁력을 잃어 매각됐지만 네트워크 사업은 여전히 세계적인 강자다(현재 노키아는 이동통신망 등을 구축하는 네트워크 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임). 핀란드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건 물론이다.”
―노키아 의존도가 높았던 나라가 매우 빠르게 창업을 강조하는 경제구조로 바뀐 게 이례적이다. 한국도 대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창업을 활성화하려고 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
“핀란드는 인구가 약 55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전쟁 등 어려운 시기도 많았다. 그래서 큰 변화가 밀려오면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문화가 아주 강하다. 정부가 기술혁신지원청(TEKES·테케스)을 통해 창업을 지원했지만, 다른 섹터들도 신속하게 변화를 받아들였다. 인구가 적어 네트워킹이 용이하고 동시에 교육수준이 높다는 것도 핀란드가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창업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어떤 섹터가 핀란드를 ‘스타트업 강국’으로 만드는 데 특히 기여했나.
“대학이 큰 역할을 했다. 핀란드의 대학교육은 노키아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다르다. (노키아 몰락 뒤) 대학들이 스스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창업에 필요한 기술개발과 교육에 나서고 있다. 핀란드 젊은이들이 최근 스타트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대학의 창업교육 덕분이라고 본다. 교수들도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데리고 창업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 중 하나인) ‘슬러시’가 헬싱키에서 열리는 것만 봐도 핀란드의 창업 문화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한국에선 핀란드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경제·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교육부문에서는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있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시대에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인해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AI는 산업과 교육 시스템을 모두 바꿀 것이다. 이미 핀란드는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다. 사실상 국가적으로 인적자원 정책을 바꾸는 시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한 사람이 5개 정도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핀란드 전체 국민(약 550만 명) 중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10년 안에 다양한 형태의 재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계획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또 AI 관련 산업에서 핀란드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할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드물게 기업인 출신으로 총리직에 올랐다. 취임할 때 강력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성과가 어떤가.
“기업과 정부는 정말 다르다. 일하는 문화와 속도가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장관도 취임할 때(14명)보다 줄이려고 했는데 정치적인 이유와 각 당의 입장 차이 때문에 오히려 17명으로 늘었다(웃음). 하지만 ‘정부 전략 프로그램’이란 명칭 아래 임기 중 달성해야 할 △실업률 △일자리 수 △재정 목표 △정부부채 비율 △감세 규모 등을 설정했다. 또 매달 두 차례 모든 장관이 모여 하루 종일 개혁의 방향과 목표치 도달 수준 등에 대해 토론하는 ‘전략 미팅 데이(Strategic Meeting Day)’도 마련했다. 핀란드 정부에서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달성 방안을 고민한 적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이제는 임기 중(2019년 5월까지) 대부분의 전략과제를 달성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고 있다. 처음 총리가 됐을 때는 정책 추진과 (부처 간, 정당 간) 입장 조율 과정에서 민간 기업처럼 속도가 안 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국정운영에서는 대화와 조율이 정말 중요하다.”
―사회보장제도의 역사가 긴 북유럽 국가인데도 건강보험과 노동 개혁을 과감히 추진했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고, 고령화 같은 사회적 변화도 분명했기 때문에 개혁은 필요했다. 건강보험의 경우 정부 등 공공부문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대신 기업이 자신들이 고용한 사람에 대한 지원을 더욱 늘리도록 했다. 노동 개혁의 핵심은 기업의 인건비를 약 4% 줄일 수 있도록 노동계와 합의한 것이다. 임금이 줄어든다는 건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그 대신 정부는 감세 정책을 펴 소득이 줄어도 국민의 생활고가 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 인건비 부담이 줄어든 기업들이 계속 성장하고, 장기적으로는 일자리도 더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핀란드가 시도한 노동 개혁은 국민에게도 도움이 된다.”
―한국과 핀란드는 올해 수교 45주년을 맞이한다.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과 관련된 계획이 있나.
“개인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많다. 최고경영자(CEO) 시절에는 한국 기업과 거래도 했었다(웃음). 두 나라 모두 전쟁과 가난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과학기술 및 경제 강국이 된 공통점도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19일 면담 때 ‘한국과 핀란드는 공통점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마리아 로헬라 핀란드 국회의장과 장관 2명이 방한한 것도 핀란드가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중 내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올해 핀란드를 많이 찾아주고,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면 좋겠다.”
―이색 취미가 많다. 가솔린 대신 폐목재를 연료로 이용하는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고, 비행기를 직접 몰기도 한다.
“재생에너지 기술에 관심이 많다. 이 기술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건 취미다. 일자리를 만들고, 지구환경을 좋게 만드는 취미다(웃음).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을 만들어 30∼40명을 채용하고 10개 나라에 제품을 수출한 적도 있다. 비행기 조종도 취미다. (2016년 7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해) 몽골을 방문할 때는 직접 비행기를 몰고 갔다. 한국에 올 때는 직접 몰지 않았다. 2주 뒤 룩셈부르크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때도 직접 비행기를 조종할 생각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나.
“19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부문에서 한국 선수(차민규)가 은메달을 딸 때, 핀란드 선수(미카 포우탈라)는 아쉽게 4위에 그쳤다. 핀란드와 한국 선수가 같이 메달을 땄으면 매우 기뻤을 것이다.”
강릉=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누구?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기업인으로는 드물게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시필레 총리는 오울루대 대학원(공학석사)을 졸업한 뒤 1985년 전자제품 회사 라우리 쿠오카넨에 입사해 제품개발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전자업체인 솔리트라의 최고경영자(CEO)가 됐고, 이 회사의 지분을 인수한 뒤 1998년 1200만 유로(약 140억 원)에 기업을 매각해 ‘백만장자’가 됐다. 시필레 총리는 50세가 된 2011년부터 ‘정치 메이저리거’가 된다. 중도 성향의 중앙당 소속으로 오울루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이듬해 당 대표가 됐고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에 오른 그는 “여러 번 창업에 도전해 성공한 경험을 정치에 접목하겠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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