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불안한 노후]『은퇴준비엔 再修가 없다』

  • 입력 1997년 1월 10일 20시 23분


「孔鍾植·夫亨權기자」 무도 피할 수 없는 「은퇴 이후」를 대비하지 못해 「불안한 노후」나 「비참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은퇴생활〓제2의 새 인생」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은퇴인 만큼 대부분 젊어서부터 노후대비를 하고 정작 은퇴를 하게 되면 미리 준비한 대로 직장에 다닐 때는 할 수 없었던 여가를 즐기며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 등으로 계획된 제2의 인생을 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급속히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미리미리 은퇴에 대비하는 「은퇴문화」가 확립돼 있지 않은 실정. 따라서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정년을 맞거나 요즘처럼 명예퇴직 당하고 「인생의 낙오자」처럼 비참한 노후를 지내는 사람이 흔하다. 우선 은퇴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돈. 특히 노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직장에서의 성공」이 「노후의 성공」을 보장할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고 은퇴준비를 소홀히 하다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버림받은 엘리트가 의외로 많다. 경제인총연합회의 고급인력정보센터나 노동부산하 인력은행, 서울시가 운영하는 고령자취업 알선센터에는 명문대를 나온 뒤 기업체에서 임원이나 사장까지 지낸 엘리트들의 지원서가 수두룩하다. 경총의 全大吉(전대길)고급인력정보센터소장(50)은 『서울대 출신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 「한달에 1백50만원만 준다면 어디에서든 일하겠다」고 매달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며 『「재수」가 불가능한 노후준비를 한번 소홀히 하면 말년의 고생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피와 같은」 퇴직금이나 노후자금을 자식에게 빼앗겨 비참한 노후생활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지난 94년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김모씨(62)는 1억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 이 중 절반을 장남이 집을 사는 데에 보태고 나머지 절반은 사채로 빌려줬다. 그러나 채무자가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바람에 노후자금이 한푼도 남지 않게 됐다. 그 후 장남을 포함, 자식들이 모두 모른 체해 매달 기본적인 생계비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김씨는 『요즘 「일시불 퇴직금은 3년을 못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며 『축의금이 없어 가까운 친척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편 국영기업체 간부로 있다가 지난해 3월 퇴직한 강모씨(59)는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남편따로, 아내따로」 생활을 한 것이 퇴직 후에 문제가 돼 부부관계에 금이 간 경우. 퇴직 이후 이들은 함께 있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지자 오히려 불편해졌다. 특히 부인은 남편 점심 때문에 외출도 못하고 친구도 제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집안에 있는 남편」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된 것. 몇달 후 부인이 무심코 『당신은 도대체 밖에서 점심 먹을 곳도 없느냐』고 불만을 터뜨린 것이 화근이 됐다. 이것을 계기로 이들 부부는 요즘은 서로 말조차 하지 않는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한편 건강한 노후생활에 「독약」으로 꼽히는 건강관리를 평소에 소홀히 했다가 고생하는 은퇴자도 많다. 「부모 병수발 10년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듯 건강을 잃은 노인은 현대판 고려장까지 당하는 등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 「성공적인 노후생활」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는 정년퇴직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 특히 일 우선으로 살아온 「고학력노인」들의 경우 그동안 여가를 보내는 방법이나 취미생활이 없는 상태에서 제2의 인생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 일단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는데다가 뭔가 재미있게 보낼 만한 프로그램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형편. 이 때문에 일부 정년퇴직자들은 아예 퇴직 후에도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마련해놓고 매일 「출근」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연세대 의대 정신과 李弘植(이홍식)교수는 『정년퇴직자 대부분이 「정년 이후」생활에 훈련이 돼있지 않다』면서 『이 때문에 불면증이나 우울증, 아니면 알코올중독 등 심각한 「은퇴증후군」에 걸려 병원을 찾는 정년퇴직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노후생활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자녀를 결혼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정년을 맞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경우. 올해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두 자녀를 결혼시키지 못한 I시 강모 건설교통국장(60)은 『결혼비용은 둘째치고 직함이 있는 상황에서 자식들을 결혼시켜야 체면이 설텐데 걱정』이라며 『요즘은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는 은퇴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풍토. 은퇴와 함께 노후를 즐기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은퇴를 고려 중인 김모씨(은행원)는 『우리사회는 은퇴하면 「인생종쳤다」고 보는 이상한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면서 『은퇴 후에 인생을 여유있게 즐기면서 살고 싶은데 사회여건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가정관리학과 金兌玄(김태현)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은퇴를 「일에서의 해방」 「명예로운 퇴직」보다는 「퇴물」 「경제적 어려움」 「무료한 생활」 등과 동일시할 정도로 바람직한 은퇴문화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차원에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후가 즐겁기 위해서는 개인차원에서 철저한 사전준비와 함께 노인복지에 대한 국가적인 준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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