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
오전 2시. 삐삐가 울린다. 깜짝 놀라 잠을 깨 번호를 확인한다.
「4444」.
죽음을 뜻하는 숫자. 갑자기 공포에 휩싸인다.
최근 「삐삐폭력」으로 고통받는 10대가 늘고 있다.
「1818(×팔×팔)」 「6666(악마)」「6464(육시를 내겠다)」….
시도때도 없이 호출기에 찍히는 번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보낸 「섬뜩한」 메시지로 신경쇠약증에 걸린 청소년이 많다.
서울 K중 이모군(15)도 이같은 삐삐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다. 이군이 「삐삐공포」에 시달린 것은 두달전부터. 이군은 『하루에도 두세차례씩 「18184444」라는 삐삐를 받는다』며 『대부분 한밤중에 오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이군은 호출기를 없애 버렸다.
음성녹음으로 직접 「협박」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 M여고 서모양(17)은 『얼마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부터 「죽여버리겠다. 밤길을 조심하라」는 음성메시지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전혀 모르는 남자의 것이어서 함부로 정체를 단정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삐삐폭력에는 「이지메」형도 있다. 여러 학생이 한사람의 동료를 두고 계속적으로 기분나쁜 번호나 음성녹음을 남기는 식이다.
서울 D고 김모군(17)은 『전학온 아이의 삐삐에는 으레 급우들이 「101092(×탱구리)」와 같은 숫자를 찍게 마련』이라며 『장난을 하는 사람은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돌을 맞는 개구리나 다름없이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삐삐폭력에 대응하는 방식도 가지가지.
대부분의 경우는 「속수무책형」. 한마디로 「별 수 없다」는 얘기다. 서울 K중 박모양(15)은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젠 「그러려니」하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예 호출기를 없애거나 번호를 바꿔버리는 「회피형」도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S중 최모군(14)과 같은 「화풀이형」이다. 최군은 『처음에는 참았으나 「왜 하필이면 나에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서 『친구에게 내가 받은 똑같은 번호를 찍어 화풀이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삐삐폭력이 또 다른 삐삐폭력을 낳는 것이다.
그럼 요즘엔 어떤 번호가 가장 심한 욕일까. 그것은 바로 0303. 이 메시지를 받는 사람은 속에서 천불이 난다.
상계백병원 이정호신경정신과장(54)은 『청소년 삐삐폭력은 학교생활의 불만이나 스트레스에서 오는 잠재의식속의 적개심을 비정상적으로 해소하려는 행위』라며 『피해를 당할 때는 혼자서 이겨내려 하지 말고 친구나 부모님과 공개적으로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