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여의도 「열風」이 분다

  • 입력 1997년 4월 22일 09시 14분


서울 여의도 KBS2 「가요 톱 10」의 생방송 날. 낮 12시경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여학생들이 오후 5시경 되자 1백여명으로 늘어났다. 12시에 왔다는 이모양(K여상2). 『방청권을 얻지 못해 일찍 왔다』는 이양은 이날 학교에서 조퇴했다. 『직접 와서 보니까 즐겁고 너무너무 행복해요. 왁왁 소리 지를땐 스트레스가 확 풀려 날아갈 것 같아요』 평택에서 왔다는 조모양(P여고2년)은 인터뷰를 자청했다. 『이름 나가면 너 혼날텐데』라는 친구의 만류도 무릅쓰고 『화끈하게 학교 빼먹고 왔다』고 말했다. 이유는 『스타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단 한가지. 게다가 『우리들을 날라리만으로 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우습다고 생각한다』는 말에는 10대 특유의 반항도 실려 있다. D상고 2년 박경훈군. 일요일마다 여의도 광장에 온다. 집이 있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여의도까지 오는데 1시간 남짓.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데 서울에서 여의도만한 곳이 없다. 그의 말. 『갈 곳이 없어요. 집 근처 공원에서는 혼나고 길거리에서는 엄두도 안나고…』 「갈 곳 없음」은 「위기의 10대」를 가리키는 심리적 특성중 하나. 그러나 박군의 하소연은 심리 차원을 넘어 「갈곳없는 세대」가 실제로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박군이 여의도에서 만나는 이들은 또래 선후배들. 롤러 블레이드도 여기 형들에게서 배웠다. 두어달전 10여명 되는 형들이 구르는 신발을 타고 펼치는 묘기에 매료됐던 것. 아르바이트로 12만원을 벌어 장비를 구입했다. 이제는 자기한테도 여학생들이 『멋있다』며 사진 같이 찍자고 매달린다. 한쪽에는 10여명의 여중생이 함박 웃음을 지은채 자전거를 타고 있다. 월곡중 1년생 김선양 등은 『동네 언니들과 자주 온다』며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의도 광장은 이처럼 10대들이 「또래 집단」을 이루는 놀이마당이다. 10대들은 이곳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놀면서 아르바이트 정보나 놀이수단 등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끼리끼리 어울리면 「하루 벗어남」의 죄의식도 가벼워진다. 여의도 광장이나 방송국 녹화 현장에 자주 오는 서울, 그중에서도 특히 강북의 10대들은 한 학급에 30%정도라는 것이 그들 스스로의 분석. 한반 50여명에 15명 가량은 일주일에 한번꼴로 여의도에 온다는 얘기다. 〈허엽 기자〉 ▼ 이래서 왔다 ▼ 『탁 트인 공간이어서 시원해요. 주위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성동여실고 3년 권영화 성혜진양은 지난16일 학교 소풍을 다녀온 뒤 오후 시간을 보내러 여의도 광장에 들렀다. 며칠간 별렀던 일. 자전거를 빌려 타고 9만여평 되는 광장을 오가면 가슴이 탁 트인다. 『여가 시간에 갈 데가 없어요. 무조건 가지 말라는 곳은 많고. 어른들은 이 답답함을 몰라요』 권양은 특히 여의도는 돈이 많이 들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노래방에 가려면 시간당 8천∼9천원하는데 이곳에서는 3분의 1밖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탁 트인 곳이어서 불량배들과 마주칠 우려가 적어 안심이라고. 이들이 학교밖에서 놀 곳을 찾는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 공부와 규율을 강조하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작은 탈출」부터 상쾌함을 준다는 것이다. 성양은 『어리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많다』며 『어른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우리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대중스타들에게도 다른 또래 못지 않게 관심이 많다. 요즘 10대 스타 가운데는 「애송이의 사랑」을 부른 고3 여가수 양파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허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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