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21]시리즈를 시작하며/21세기를 위하여

  • 입력 1999년 1월 6일 19시 41분


<<부패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기로 넘어갈 수 없다. 부패가 설사 비도덕적 사회에 사는 도덕적 인간의 숙명이라고 해도 이를 줄이고 없애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 ‘클린 21’이 부패 없는 맑은 사회 건설에 나섰다.>>

“북한은 미쳤고 남한은 썩었다.”

97년 탈북해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黃長燁)씨의 지적이다. 충격적이다. 부패가 만연돼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적화혁명을 추구하는 북한의 광기에 견줄까. 유감스럽게도 이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부패의 생활화’란 말까지 나왔을까. 김지하(金芝河)의 ‘오적(五賊)’은 차라리 낭만적이다. 부패에 관한한 위 아래 구별이 없고 민 관의 구별이 없다.

정치권부터 보자.지난 한 해 모두 17명의 현직 의원(여 6, 야 11)이 비리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들 중 3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고 10명에게는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대부분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대가성 자금을 받은 혐의다.

대검은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 동안 4급이하 중하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비리 단속을 벌였다. 사법처리된 공직자는 4백7명에 달했는데 계장급인 6급 주사의 평균 뇌물수수 액수가 1천77만원이었다.

부패는 민(民)의 영역에도 만연돼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납품비리나 원청업자와 하청업자간의 하도급비리는 이미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은 부패한 나라가 돼 있다. 98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한국의 투명성지수는 4.2로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와 함께 조사 대상 85개국 중 깨끗함의 순위가 43위였다.

부패는 그것이 당사자들의 문제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부패는 국민 모두로 하여금 엄청난 사회비용(Social Cost)을 대신 물도록 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다.

김영평(金榮枰)행정연구원장에게 부패의 사회비용을 계량적으로 추정해달라고 의뢰했더니 그의 설명이 이랬다.

한 음주운전자가 단속경찰에 뇌물을 주고 처벌을 면했다고 치자. 그의 행위는 음주운전의 증가→교통사고 증가→교통사고 사망자와 부상자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보험금의 인상을 촉발하게 된다. 돈을 받은 단속 경찰의 행위는 경찰부패 구조화→음주운전의 증가→음주운전 단속을 위한 경찰인력의 추가 배치 및 단속장비 추가 수입→단속 철저화에 따른 교통체증→경찰인력 부족으로 인한 다른 범죄의 증가→이에 따른 국민 피해 가중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그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얘기였다. 음주운전자는 몇십만원의 돈을 주고 처벌을 면했고 교통경관은 그 돈을 받았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로 인한 막대한 사회비용을 국민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부패는 더 이상 덮어둘 수 없게 됐다. 당장 반(反)부패라운드가 우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부패라운드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뇌물방지에 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협약이 다음달 15일부터 발효되면 우리의 거의 모든 국내외 거래가 국제감시하에 놓이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부패 청산 없이 21세기로 넘어가기는 어렵게 돼 있다.

대우경제연구소의 한상춘(韓相春)박사는 97년초에 이미 부패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경제발전의 초기에는 뇌물이 사회적 거래비용을 낮춰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소득 1만달러선에 오면 부패규모가 커져 경제성장을 방해하게 되는 ‘임계점’을 맞게 된다. 우리는 그 임계점에서 부패를 해결하지 못해 넘어졌다.”

실제로 IMF는 한 보고서에서 “국가의 투명성지수를 2단계만 상승시켜도 투자율이 4% 증가하고 경제를 0.5% 이상 성장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부패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법적 제도적 장치의 보완에서부터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해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부패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고 김상협(金相浹)전 총리의 말이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그는 일찍이 “부패란 흡수되는 것”이라고 했다. 엄벌주의로 ‘척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력이 커지고 사회의 건전성이 커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흡수’돼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클린 21’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부패의 환부를 도려내기도 하겠지만 부패가 흡수돼 사라질 수 있는 건강한 사회 튼튼한 시민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겠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공직자가 청렴하면 그 고을 백성들만 은혜를 입게되는 것이 아니라 산이나 물과 돌까지도 그 맑은 빛에 젖게 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클린 21’은 이제 맑은 물이 넘쳐 흐르는 사회 건설을 위해 긴 여정에 오른다.

◆ 클린 21팀

팀장 이재호(정치부차장)

이병기(사회부)

공종식(정치부)

부형권(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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