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사람들]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창수 팀장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46분


"두 달이나 떨어져있는데, 걱정되지 않으세요?"

"워낙 씩씩하니까… 잘할거예요"

아내 이야기를 하며 씩 웃는 그의 입가에 그리움이 번진다. '말씀 많이 듣고' 만난 사람이어서일까. 전혀 낯설지가 않은 그.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창수 팀장이다.

예산감시 시민행동의 제보처리 팀장인 동시에 일전에 소개됐던 세민재단 박선영간사의 남편인 그는 지난 4일 두 달 일정으로 미국 NGO탐방을 떠난 아내 이야기를 하며 마냥 멋적은 듯 웃기만 한다.

그 순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잘 들어 간거야?"

아내 박선영 간사다.

"시차적응은 잘 돼?" "영어 땜에 고생하지…" 전화를 받은 그는 안부 묻기에 여념이 없다.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손가락으론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만지작거린다. 먼 데서 들어도 깨가 쏟아지는 게 신혼 냄새가 물씬난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전국 예산낭비 제보전화 1588-0098을 관리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밑빠진 독' 상을 선정하는 것. '밑빠진 독' 상이란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매달 최악의 선심성 예산배정과 어처구니없는 예산낭비 사례를 선정해 주는 상이다.

작년 8월 하남 국제환경박람회를 개최하여 186억원의 세금을 쓴 하남시가 첫 수상자에 뽑힌 것을 시작으로 제일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익산 보석박물관, 천년의 문 등이 이 상에 선정됐다.

6개 은행 완전감자 조치를 발표해 지난달 수상자로 선정된 금융감독위원회에는 실제로 밑빠진 독을 소포로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밑빠진 독' 상을 정하기 위해 그는 매달 접수된 제보와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200~300여개 사례를 검토한다. 대상이 정해지면 그에 관해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구하고 검토하여 보고서를 만든 후 전문가들에 자문을 구하고 관련 단체들에 회람을 돌려 의견을 나눈다.

"상 하나 선정하고 나면 한 달동안 어떻게 다 했나 싶어요"

혼자 하긴 좀 벅차다 싶은데도 일 많다는 소리는 절대 안한다.

"희생이나 봉사는 아니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싫습니다. 전적으로 내가 좋아서 하는건데요, 뭐. 누구는 '팔자'라고 하더군요."

시민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대학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올해로 시민운동 경력 10년에 이르는 그는 경실련대학생회 출신이다. 한양대 경제학과 88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93년 3월, 30여개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경실련대학생회 발족에 참여했다.

"1학년때부터 학생운동을 했어요. 그 땐 현재의 어떤 것들은 급진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세계는 변하고 있었어요. 소신을 지켜나가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죠."

"세상을 바꾸는 것." 그 말을 하는 그가 주먹을 불끈 쥔다.

"그게 삶의 지표인데 그걸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때 시민운동을 생각했어요. 거기서 희망을 발견한거죠."

그 후로 경실련에서 정책실, 도시개혁센터, 환경개발센터 등을 거쳐 99년 12월 함께하는 시민행동 창단멤버가 되었다.

그가 예산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97년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에 있을 때예요. 그 해 말 IMF가 터져서 결식아동이 2만명에서 15만명으로 늘었죠. 조사된 것만 그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았겠어요. 초등학생 1명이 하루에 1500원, 1년에 54만원이면 방학때까지 먹이거든요. 그런데 13만명이 늘었으니…" 그가 열손가락을 꼽아가며 계산을 한다.

"180억이 증액돼야 했어요. 180억. 우리나라 1년 예산이 공단들 몫까지 다 합쳐 400조예요. 엄청나죠? 180억이면 1만분의 1도 안되잖아요. 그런데 못하겠대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국가가 뭘 하고 싶은지가 표현되는 게 예산이예요. 국방비에 예산을 많이 두는 나라가 있는가하면 사회복지에 배정을 많이 하는 나라도 있죠.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나라가 어떤 부문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예산낭비에 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예산낭비는 범죄예요. 탈세가 범죄잖아요. 자기가 내야 될 세금을 내지 않는 것… 예산낭비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주머니에 안 들어간다고 범죄가 아닌 건 아니죠."

그러던 그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린다.

"'우리나라는 원래 이래'. 이 말이 제일 화나요. 원래 부패가 없는 나라가 어딨겠어요? 다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갖춰져서 그런건데."

그의 올해 계획은 무엇일까.

"'시민이 선정하는 밑빠진 독 상'을 만들겁니다.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서 선정단을 꾸릴거예요. 3월3일 납세자의 날을 기점으로 홍보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라디오에 광고도 내고요."

그러던 그가 이번엔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세상을 바꿔야 되는데…"

그리고 웃는 얼굴로 말한다. "취미생활로 하면 절대 안되죠. 남들 한 걸음씩 할 때 열 걸음, 백 걸음이라도 할 겁니다."

그는 시민운동을 택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고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더욱 신이 나는 것일까.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관·세계관이다 못해 '팔자'가 되어버린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몇 번이라도 주먹을 불끈 쥘 그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오세린/동아닷컴기자 oh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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