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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영혼, 강제징용자의 유해를 찾아서 |
불현듯 1943년 치쿠호 지방의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몇번이고 죽으려고 했던 악몽이 떠오른 배옹은 지난 50여년 동안 애써 지우려고 몸부림쳤던 강제징용의 참상이 뇌리를 스쳤다.
'나도 그 탄광을 탈출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 모습이었겠구나'
일본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숨진 강제 징용자들의 유해와 맞닥뜨린 배옹은 우선 한국인의 유골을 찾아내 납골당에 안치하고 나중에 고국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평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그는 재일교포와 일본내 시민단체들에 호소를 거듭한 끝에 지난 96년 4월 드디어 단체를 결성했다.
'추도비건립실행위원회(대표 배래선)'
특히 위원회의 운영에는 조총련계와 민단의 구분없이 모든 재일교포가 힘을 합쳤고,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일본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지원받았다.
단체결성으로 힘을 얻은 회원들은 후쿠오카현의 1000여개의 절을 돌아다니며 한국인 유해를 수소문했다. 1구의 유해라도 더 찾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깊은 산 속의 작은 사당까지도 발걸음을 이어갔다.
"절 한 곳에서 유해 상자 20여개를 발견했을 때 무척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착잡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유해는 160여구. '朝鮮'또는 '半島'라고 쓰여있는 유해상자로 한 핏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흐릿하게 지워져가고는 있지만 이름이 적혀있는 유해상자도 눈에 띄었다.
유해를 찾는 동안 추도비건립실행위원회는 납골당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시켜 지난해 12월 완공된 '무궁화당'에 55구의 유해를 안치했다. 위원회는 앞으로 무궁화당을 확장해 나머지 유해도 모두 안치할 예정이다.
한편 위원회는 당시 탄광에서 일했던 일본인, 한국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강제징용자의 명단 확인작업에 나섰다. 오직 생존자의 희미한 기억과 몇 안되는 기록을 뒤져 200여명의 이름과 당시 주소 등을 정리한 명부를 작성했다.
위원회는 이 명부와 유골상자의 이름을 대조 마침내 7구의 유해 신원을 밝혀냈다.
배옹은 이들의 유족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2일 설레임 속에 고국땅을 밟았다. 위원회는 어렵게 살고 있는 유족들에게 유골의 송환비용까지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유족들은 그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뿐.
"유해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서 일본과 한국에 강제징용 등 제대로된 역사를 알려주자는 마음뿐입니다"
현재 재일교포 젊은이들은 이런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누가 시킨일도 아니고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숨이 붙어있는 징용자의 마지막 의무라는 생각에 배옹을 비롯한 위원회 회원들은 오늘도 타국의 산사를 헤매며 역사 위에 덮힌 뿌연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최건일/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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