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저작권은 문화, 예술의 창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였지만,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등 '기능'적인 생산물에도 저작권이 적용되고 있다.
카피레프트를 고안한 것은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 Free Software Foundation)의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당시 MIT 연구원이었으며,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애초에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공유되었는데, 소프트웨어가 점차 상업화되어가면서 프로그램에 저작권이 부여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자유롭게 프로그램 소스(Source)를 공유하던 문화도 사라져갔다.
리차드 스톨만은 이러한 현실에 분개하였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을 설립하였다. 처음 시작한 것이 그누(GNU) 프로젝트였는데, 이는 자유로운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누 프로젝트의 소프트웨어에는 카피레프트가 적용된다. 이는 먼저 카피라이트를 설정하고, 여기에 GPL(General Public License)을 덧붙이는 것인데, GPL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GPL 라이센스가 부여된 소프트웨어는, 누구나 그것을 자유롭게 복사하고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용도에 맞게 수정할 수 있다. 단, 한가지 제한이 있는데 GPL 라이센스가 부여된 프로그램을 자신이 수정하여 다시 배포할 경우, 그 프로그램 역시 카피레프트를 따라야 한다.
이것은 카피레프트가 상업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자유소프트웨어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카피레프트는 카피라이트를 이용하여 카피라이트와는 정반대의 지향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90년대 후반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리눅스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리눅스가 대안적인 운영체제로 부상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현재의 리눅스 열풍은 리차드 스톨만이 생각했던 초기의 지향과는 상당히 어긋나있는 상황이다. 즉, 정보공유라는 그누의 철학보다는 기술적, 사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리눅스'로서 부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같은 운영체제의 하나로 리눅스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리눅스는 전체 GNU 운영체제의 한 부분(커널이라고 부른다)에 불과하다. 그래서 리차드 스톨만은 리눅스가 아니라 그누/리눅스로 불리기를 원한다.
이는 단지 용어를 정확하게 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그누의 철학이 없이는 그누/리눅스 운영체제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리눅스를 '공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그누/리눅스는 자유소프트웨어(Free Software)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Free'는 '공짜'가 아니라 '자유'의 의미이다. 즉, 가격의 개념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복사하고 사용하고 수정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카피레프트 혹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역으로 저작권이 갈수록 강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불법복제하여 쓰더라도,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자들은 생산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저작권을 위반하는 것은 '해적질' 혹은 '도둑질'이라고 몰아세운다.
또한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정보공유와 저작권의 대립은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최근에 미국 연방법원이 MP3.com이나 냅스터에 대해서 저작권 위반 판결을 내린 것도 이러한 한 예이다.
냅스터는 이용자들이 서로 음악파일을 교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인데, 냅스터가 직접적으로 저작권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자들은 냅스터가 저작권 위반을 부추긴다는 혐의로 고소하였던 것이다.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는 정보의 생산 및 유통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즉, 디지털화된 정보는 '질'의 손상이 없이도, 손쉽게 복사될 수 있으며, 이에 드는 비용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또한 인터넷의 발전은 정보 소통에 있어서의 거리 개념을 거의 소멸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오히려 저작권자에게는 엄청난 위협으로 느껴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저작물이 손쉽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은 어디서 발생하는가?
현재 저작권법은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라는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그 적용범위를 확장하고 있지만, 저작권법의 틀은 인쇄 매체시대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과연 저작권법이 디지털 시대의 정보나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에 적합한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저작권법은 정보나 지식의 자유로운 유통과 확산을 가로막음으로써, 정보나 지식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하고, 2차적 생산을 저해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은 정보의 개작을 통한 2차 저작물의 생산을 무척 용이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능성은 저작권법에 의해 제한된다.
저작권법은 오로지 상품화된 형태로서의 정보 생산과 유통을 합리화하는데, 이는사회의 지식기반을 크게 왜곡시키게 된다. 정보나 지식에 대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킬뿐더러 인문학과 같이 상품성이 떨어지는 지식 영역은 위축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저작권자들은 생산자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떠한 지식에 대하여 저작권 보호기간인 50년 동안 독점하겠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기실 정보나 지식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 공공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산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작은 기여에 대하여 50년의 독점기간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대한 '해적질'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정보, 지식의 생산이 꼭 상품의 형태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사회의 지식기반은 단지 상품성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서는 안되며 사회, 역사적인 다양한 가치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여 육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큰 역할을 하겠지만, 카피레프트 운동과 같은 자율적인 움직임도 계속 확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카피레프트 운동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영역을 넘어서, 학술, 음악, 미술 등 여타 영역에서도 실천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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