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하나인 기타자와 녹도(綠道) 담에는 ‘모두 함께 조성한 꽃길이니 소중하게 가꿉시다’라는 푯말과 함께 갖가지 그림이 그려져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흐르는 시냇물은 하수를 정화한 물이지만 피라미들이 살 정도로 깨끗하다. 나무와 꽃마다 이름과 설명이 붙어있어 어린이 자연학습에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는 일본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마을가꾸기’ 운동이 낳은 성과 중 하나다. 마을가꾸기란 지역 현안에 주민이 참여하는 도시계획 수법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주민들끼리 자발적으로 도우며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활동이 모두 포함된다.
마을가꾸기시민재단에 지원을 요청한 주민들의 계획을 보면 나무젓가락 재활용, 녹지조성, 장애인 취업지원, 하천수질 정화와 반딧불이 공원 조성, 지역 문화유산 보호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동(洞)이나 구(區)규모의 생활환경과 관련된 일이라는 점이다.
마을가꾸기가 시작된 것은 도시화와 개발이 진행되면서 발생한 공해와 교통체증 등 문제점을 주민들이 자각하면서부터. 세타가야구의 경우에도 대규모 아파트 건설에 주민이 반대하면서 이 운동이 시작됐다.
이곳 주민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우메즈 마사노스케(梅津政之輔)는 세 가지의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 것, 다수결이 아닌 합의제로 모든 일을 결정할 것, 인간관계를 중시할 것 등이다.
98년 세타가야구가 도로확장공사를 계획했을 때 주거공간 침해를 이유로 인근 주민 80%가 반대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교통소통이 중요하다며 찬성했고 구청은 주민협의회가 결정을 내려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우메즈씨 등은 4000가구에 전화와 편지를 보내고 무려 1년간 의견을 교환한 끝에 절충안에 합의할 수 있었다. 구청도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탈피해 1년이나 도시계획을 미루는 인내심을 보여준 것.
우메즈씨는 “그 사건 이후 한 대학원생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민회의를 통해 친구가 늘었다는 응답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다”며 마을가꾸기가 파편화된 도시민들을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마을가꾸기 운동을 권장하는 곳도 있다. 도쿄 외곽에 위치한 인구 16만명의 아담한 베드타운인 미타카(三鷹)시는 20년 전 7개의 ‘커뮤니티 센터’를 짓고 주민 자치회를 유도했다.
자치회의 주업무는 동네 구석구석을 어떻게 개선할지 의견을 내는 것. 미타카 시내를 흐르는 하천 양 옆은 녹지로 정비돼 있고 그 위에는 자전거도로가 마치 강변도로처럼 이어져 있다. 원래 콘크리트 둔치였던 곳을 주민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개선한 것이다.
볼품 없었던 버스정류장도 주민 의견에 따라 원두막 모양으로 산뜻하게 개조했다
오오시타 히사무네(大石田久宗) 미타카시 문화실장은 “매년 건의를 받아 예산과 재산권 침해여부를 검토한 후 두세건씩 채택하고 있다”며 “둔치를 녹지로 만들었더니 시민들의 놀이공간이 될 뿐만 아니라 강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수질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마을가꾸기가 모두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아직은 주민 위에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것이 사실이고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미타카 시민들은 녹지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집 앞의 가로수는 낙엽이 떨어진다며 가지치기를 요구하는 이율배반을 보이기도 했다.
지바대 지역계획학과 나카무라 오사무(中村攻)교수는 마을가꾸기의 외형적 성취에는 한계가 있지만 ‘내가 마을을 만든다’는 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을가꾸기가 ‘민주주의의 학교’역할을 한다는 것.
“아직은 정부의 일방적 도시계획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요구가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부도 시민의 계획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을 본받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국이 주민을 위한 마을가꾸기에서 앞서나갈 수 있습니다.”
<도쿄〓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 '도쿄 볼룬티어 센터' ▼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영월댐(동강댐) 백지화와 같은 거대한 성취는 일본 시민단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이나 불우아동 돕기와 같은 소규모 공동체운동은 일본이 월등하다. 왕성한 자원봉사활동이 그 원동력이다.
‘도쿄 볼룬티어 센터’는 소규모 시민단체의 팜플렛을 제작해주고 자원봉사 희망자에게 활동조직을 알선해주는 곳이다. 이곳에 지원을 요청한 단체는 무려 3000여개. 단체마다 15∼50명이 활동하므로 도쿄에서만 줄잡아 10만명 정도가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셈이다.
구마가이 노리요시(熊谷紀良)간사는 “최근 가장 많이 희망하는 봉사는 장애인과 고령자 복지에 관한 것”이라며 “예전에는 복지가 행정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함께 살기’차원에서 많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담용으로 비치된 파일을 보면 놀이터에서 어린이와 놀아주는 일이나 외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같이 큰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청소년 탈선이나 각종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된다는 것이 구마가이씨의 설명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많다. 이곳 게시판에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데 필요할 때 차를 태워주실 분을 구합니다’와 같은 게시물이 빼곡히 붙어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만 설치하면 진정 그 불편함을 일반인은 알 수가 없지요. 교류를 통해 함께 사는 법을 서로 배우는 것이 마을 가꾸기의 기본입니다.”
<도쿄〓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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