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23·여·도봉구)씨는 지난 5일 뜻밖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일면식도 없는 김정옥(52·여·도봉구)씨가 자신의 신상을 훤히 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씨는 박씨의 가족, 회사, 친구 전화번호 26개와 선배 최모씨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김씨가 어떻게 전혀 알지도 못하는 박씨의 신상을 이렇게 소상하게 알고 있을까.
"새 전화를 받았더니 이상한 전화번호가 입력돼있더라"
박씨가 확인해 본 결과 김씨가 박씨의 신상을 알게 된 경위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자신의 모토롤라 휴대전화가 고장나 지난 4일 강북서비스센터에서 모토롤라 스타택 새 휴대전화를 교체를 받았는데 이 전화기에 알 수 없는 전화번호 20여개가 입력돼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무래도 새 전화가 아닌 것 같아 입력된 전화번호 가운데 홍모(23·여)씨에게 전화를 해 '아는 사람 중에 모토롤라 스타택을 사용했던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고, 홍씨가 박씨의 전화 번호를 알려줘 전화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씨는 기가 막혔다.'어떻게 나의 사생활이 통째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갈 수 있단 말인가'
박씨는 즉시 모토롤라 고객지원센터에 전화를 해 "내 휴대전화에 입력됐던 내 집과 친구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노출되었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상담원(여)은 "그럴리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고소를 하겠다는 박씨에게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전화를 먼저 끊었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박씨는 7월 14일 서울 북부경찰서에 모토롤라 강북서비스센터를 개인정보유출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박현진씨가 입력한 메모리가 들어있는 김정옥씨의 휴대전화(왼쪽)와 박현진씨의 고소장(오른쪽).
한편 김씨는 박씨의 개인 정보가 자신의 전화기에 입력된 경위를 서비스 센터에 문의했으나 서비스센터측은 재 교환만 이야기 할 뿐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헌 전화를 수리해 포장만 바꾼 게 분명"
경위를 알아 보기 위해 김씨는 지난 13일 박씨와 만났다. 그 결과 두사람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됐다.
김씨가 교체 받은 새 휴대전화는 박씨가 잦은 고장으로 반납했던 휴대전화와 기종 색깔 디자인이 꼭 같은 것이었다. 박씨가 전화를 반납한 곳도 강북서비스 센터 김씨가 전화를 교체 받은 곳도 강북서비스 센터.
이쯤 되면 회사측이 고장난 박씨의 전화기를 대충수리한 뒤 포장만 새것으로 김씨에게 넘겨 준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단순한 실수
"박씨에게 가야할 전화가 김씨에게 잘못 전달된 것"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유봉재(모토롤라 고객지원센터)실장은 "5월초 강북 서비스센터에서 박씨에게 새 전화기를 임시로 지급한뒤 본사에서 새 전화기에 박씨가 지금까지 사용하던 전화기의 메모리를 입력시켜 서비스센터로 내려 보냈으나 서비스 센터측이 이전화기를 박씨에게 교체 지급하지 않고 2개월 가량 그냥 보관하다 김씨에게 줘 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토롤라 강북서비스센터에서 작성한 수리내역서(왼쪽)와 회사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메모리 이전 완료"라는 수리기사의 서명(오른쪽).
유실장은 "현재 교체 지급되는 전 제품에 대해 메모리 이식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박현진씨의 개인정보유출은 '본사의 실수'임을 인정했다.
"조직적인 사기" 수사의뢰 방침
그러나 박씨와 김씨는 회사측의 이같은 주장을 믿지 않는다.박씨의 경우 3월 전화기를 구입해 4월6일 4월27일 3차례 수리를 받아으나 개선된 점이 없어 5월 10일 새 전화기로 교체 받았으며 새 전화기 마저 6월 26일 유사한 고장이 나 다른 대리점에서 또 다시 교환받았다.
김씨의 경우 지난해 11월초 전화기를 구입,올 7월3일 고장을 일으켰다. 전화기를 물에 적신 적이 전혀 없음에도 회사측 점검결과 침수로 인한 고장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씨는 회사측이 조직적으로 고장 전화기를 수리,새 전화기로 탈바꿈시켜 소비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이같은 의혹을 풀기위해 서울경찰청에 공식적으로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최건일/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