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최근 미국 뉴욕시 퀸스지역에 사는 교민 최모씨(31)로부터 ‘사이버 결혼’의 실제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최씨의 이웃인 교민 주부 L씨(33)는 한국 탤런트 J씨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서울의 이 홈페이지 운영자 K씨(31)는 그녀의 글이 재미있어 마치 자신이 탤런트 J씨인 것처럼 꾸며 답장을 해줬다. 이것이 계기가 돼 L씨와 K씨 사이에 메일이 오고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K씨는 2000년 6월 인터넷에 자신들만의 화상채팅 공간을 마련해 L씨를 초대했다. 최씨 등 L씨의 뉴욕 친구 4명도 함께 초청받았다.
K씨와 L씨는 이날 4명의 ‘하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이버 결혼식’을 올렸다. 모니터에 결혼서약을 하는 장면이 나오자 하객들은 ‘와, 축하 축하’ ‘잘살아라’ 등의 글을 올렸다.
최씨에 따르면 이후 L씨는 서울과의 시차 때문에 거의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해가 지면 L씨는 사무실 모니터 한쪽에 화상 채팅방을 켜놓고 일하는 K씨와 ‘신혼생활’을 즐겼다. 둘은 대개 얼굴을 보며 글로 채팅했지만 가끔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는 음성으로도 이야기를 나눴다. L씨에게 마이크로소프트 한글자판이 조금 불편한 게 흠이었다.
이들은 부부가 쓰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등 모니터 속에서 부부와 똑같이 행동했다고 한다. 전자상거래로 함께 쇼핑하고 ‘노후대책’을 세웠다. 심지어 ‘부부싸움’도 했다.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L씨의 남편은 아내의 ‘제2의 결혼생활’을 전혀 알지 못했다. L씨는 채팅을 하지 않는 시간엔 잠만 잤고 남편이나 집안일, 직장일은 차츰 뒤로 미뤘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새로운 남편’이 생기면서 뉴욕의 결혼생활 자체에 매력을 잃게 됐다는 점이다.
그녀는 최근 서울에 왔다. 당연히 K씨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수주일의 휴가를 얻기 위해 그녀는 직장과 남편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사이버 부부는 결국 현실세계에서도 만나게 된다”는 속설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K씨 역시 결혼한 남자. L씨와 K씨의 태평양을 넘나드는 ‘이중생활’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그리고 그 와중에서 L씨의 남편과 K씨의 아내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사이버 결혼은 ‘육체적 관계만 없을 뿐이지 현실 세계의 결혼생활을 위협하는 사실상의 외도’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지난 98년 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