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 캠페인]'나눔의 약속' 젊을때 합시다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8시 40분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은 “나의 관에 구멍을 뚫어 두 손을 보여 주라”는 것이었다. 살아 생전에 세상을 거머쥔 그였지만 죽을 때는 빈손임을 보여주라는 뜻이었다.

한국 최초의 안과의사이자 한글타자기 발명자인 공병우박사는 95년3월7일 세상을 떠날 때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고 쓸 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 땅 한 평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낫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이틀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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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풀꽃모임' 대표 정상명씨

수원지법 부장판사로 일하다 지난해 8월 명예퇴직한 정해남(鄭海南·47) 변호사가 당시 법원 전산망에 공개한 유언. 법관으로 일하며 저질렀을지 모를 잘못을 속죄하는 심정으로 “뇌사 판정이 날 경우 장기를 기증하고 남은 육신을 화장하며 재산의 3분의 1 이상을 이웃사랑과 환경보호에 쓰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자녀들에게는 “너희에게 일절 상속을 하지 않으면 내가 욕심을 내지 않고 변호사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유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강하다. 그러나 자신의 마지막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나눔의 집 혜진(慧眞)스님은 “한국인은 유언을 미리 남기는 것을 생소하고 불쾌하게 여기지만 미국만 해도 30, 40대에 유언을 남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고 말한다.

녹색연합에서 내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97년 ‘미리 유언하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혜영(李惠英) 차장은 “욕망 소유 등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환경문제도 해결될 수 없고 사람들이 삶의 끝을 생각한다면 보다 헛되이 살지 않게 될 것이란 취지로 유언 싣기 연재를 했다”며 “생에 대한 다그침이란 점에서 독자의 울림이 컸다”고 전한다.

유언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일수록 “유언은 젊어서 하는 것이 좋다”고 단언한다.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 사무처장은 “대학설립이 꿈이었던 한 재산가는 갑자기 병이 들어 유언의 기회를 놓치고 사망해 버렸다. 결국 재산은 양녀에게 돌아갔고 후에 그 딸이 큰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사업을 하는 유무종(柳武鐘) 한국다이아덴트 회장은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죽음과 유언에 대한 시민교양강좌가 많다”며 “전문 카운슬러가 유언장 쓰기와 관련한 법률 자문에 응하며 개인의 재산상태에 따른 ‘맞춤식’ 기부방안도 제시한다”고 말한다.

“이왕 이름을 남길 바에야 산골짜기 묘비가 아니라 공원의 벤치라도 하나 기증해 이름을 새기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李時炯)박사도 “건강할 때 유언하라”고 조언한다. 유언은 평생의 결산인데 임종 직전의 유언은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특히 죽음에 임박해서는 누구나 마음이 약해져 사회 공익보다는 가까운 혈육이나 간호자 등 사적인 관계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엔젤레터(www.angelletter.or.kr), 위시뱅크 (www.wishbank.net) 등 유언 남김 사이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유언을 메일 형식으로 보관하다가 본인이 사망했을 때 예약된 사람에게 메일로 보내주는 방식. 엔젤레터 채형석(蔡亨錫) 기술팀장은 “아직은 호기심에서 찾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지만 젊어서 자신의 인생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재단은 유산 1% 기증자들의 유언을 받아 ‘유언뱅크’를 만들고 공증집행과 상담 등을 할 예정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한번쯤 죽음과 유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남아있는 나날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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