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일본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일본 시민사회를 살펴보고 돌아본 박원순(朴元淳) 아름다운 재단 이사는 “정부 기업 개인이 힘을 모아 공익 활동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경제동물' 위상에 자성▼
우체국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 전역의 우체국 벽면은 시민단체들의 국제활동을 소개하는 포스터로 꽉 차 있다. 1991년 우정성에서 시작한 ‘국제볼런티어저금’을 홍보하는 내용들이다. 우체국에 저금하는 사람이 이자의 20% 내에서 이 기금에 기부할 것을 동의하면 우체국은 그 이자를 자동 적립해 국제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에 분배하는 것이다. 연리가 0.12%로 낮아 큰 돈은 아니지만 실시 첫달 만에 600만명이, 지금은 2600여만명이 가입했을 정도로 호응이 좋다. 이 기금에서 2000년 한 해에 모두 225개 사업에 약 65억원이 지원됐다.
일본은 1990년을 ‘자선(Philan―thropy) 원년’으로 꼽는다. 일본 사회가 국제 사회에서 경제동물(Economic Animal)로 불리던 위상에 대해 자성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해 일본의 경단련(한국의 전경련 같은 단체)이 1% 기부운동을 시작했고 ‘기업메세나협의회’도 창립됐다. 웬만한 기업에는 사회공헌팀이 신설된 것도 이 때부터다.
▼민관합심 공익활동 지원▼
일본인들이 비영리단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1995년 고베 지진. 며칠 만에 600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이 집 없이 밤을 지새워야 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5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이 두절된 고베에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몰려가 피해자를 구출하고 식사를 마련하고 행정업무를 지원했다. 이들의 활동에 감명받은 일본사회는 곧바로 비영리단체(NPO)법 제정에 나섰다. 1998년에 NPO의 법인 등록과 세금감면 등을 가능케 한 NPO법이 제정됐다.
아름다운 재단과 유사한 일본 최초의 지역재단 ‘오사카 지역재단’은 1991년 만들어졌다. 출범 10여년이 지난 현재 기금이 123억원 가량 모였다. 9년간 각종 연구기관이나 비영리단체에 지원한 돈이 약 21억7000만원. 재단에 기탁되는 기금은 액수도, 내용도 다양하다. 동남아에서 매춘 강제노동 등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을 지원해달라는 ‘거리의 아이들 구제기금’, 작고한 어머니의 뜻을 기려 복지 증진에 공헌하겠다는 ‘익명의 기금’, 태어나자마자 사망한 아기를 기려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을 원조하겠다는 ‘청하기금’ 등. 원금은 손대지 않고 이자만 쓰라거나 원금과 이자 모두를 사용하라는 등 사용 방법도 기부자가 결정한다.
박원순 이사는 “일본식 기부문화가 돋보이는 기금들도 적지 않다”고 소개한다.
▼'나무한그루 기금'등 만발▼
일본국제자원봉사센터(JVC)의 ‘나무한그루기금’도 그런 예. 작가 이누가이 미치코(犬養道子)가 베스트셀러 저서 ‘인간의 대지’의 인세를 기부한 돈에 독자들이 작은 돈을 보태는 기금이다. 책의 메시지 자체가 ‘작은 돈이라도 매일 낸다면 지구를 녹색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매달 후원금을 내는 독자가 1000여명이고 지난해에만 7500만원을 모아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숲 살리기 운동을 지원했다.
한 시민단체 대표가 만든 ‘좋은 여행(Bon Voyage) 기금’은 젊은 활동가들에게 종자돈을 지급하려는 시도. 자신이 쓴 책의 인세 1000만원을 기부했고 식당 등에 모금함을 놓고 기금을 모으고 있는데 매년 5∼10명에게 100만원씩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지니고 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