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박원순/시민참여가 NGO 키운다

  • 입력 2001년 1월 8일 10시 57분


경실련이 판공비 사용실태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해 놓은 상태에서 해당 공기업에 후원금을 요청한 사건은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도 참담한 일이었다. 경실련측은 후원금 요청과 상관없이 판공비 사용실태 정보공개 청구운동을 그 이전부터 해왔다고 해명했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시민단체 지원 재단 거의 없어▼

사회정의를 주장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는 더욱 엄격한 자기 기준과 원칙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많은 시민단체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났다. 어떤 한 단체, 어느 한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가지고 모든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을 도매금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 경실련 사태를 두고 일부에서는 모든 시민단체들이 기업에 손이나 벌리는 부도덕한 집단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정의와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수천, 수만명의 시민운동가들을 모독하고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다수의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윤리적 원칙에 따라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본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 박봉에 밤낮없이 사무실에 불을 밝히고 있겠는가. 감히 말하건대, 이들이 없다면 오늘 우리 사회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재작년에는 미국, 작년에는 일본의 시민사회를 몇 달씩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선진국들은 상품개발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사회를 성숙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경쟁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민단체들의 성장과 확산을 위해 이런 저런 제도의 틀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비정부기구(NGO)는 21세기의 키워드'라는데 이론이 없었다.

시민단체에 시민이 내는 회비와 후원금에 대해 면세조치를 취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많은 재단들이 시민단체들의 공익사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토크빌이 170여년 전에 지적한 대로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19세기부터 NGO들에 의해 성장해 왔다. NGO 성장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이들의 활동을 지지해 회원이 되는 시민들의 참여와 이들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재단에 있다. 미국에 이런 재단은 1996년 현재 4만1600여개나 됐으며, 자산만도 310조4000억원이 넘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98년 현재 공익법인은 2만6380개, 공익법인의 연간지출액은 1780조원에 이르렀다. 한 작가가 자신의 인세를 내놓아 만든 '녹색의 나무 한그루(미도리 잇폰)기금'은 그 독자들이 성금을 모아 불리고 있었으며 도쿄(東京)의 한 시민단체가 만든 '좋은 여행(Bon Voyage)기금'은 시민단체 간사들의 국제교류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요타자동차마저 재단을 만들어 시민사회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땅에 그런 재단은 거의 없다. 여러 재벌기업이 문화재단을 세워 골동품을 모으거나 언론인을 위한 언론재단은 만들었지만 NGO를 지원하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문제는 설사 그런 지원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올바른 시민단체들이라면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재단이 기업에 의해 지배되는 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1% 나눔운동' 큰 물결 됐으면▼

어쩔 수 없이 시민단체들이 스스로 나서 재단을 만들었다. 아름다운재단, 여성기금, 시민운동지원기금, 인권기금 등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동아일보사와 함께 기부문화확산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은 돈많은 재벌보다 평범한 시민들의 한푼 두푼을 모아 공익사업을 지원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는 1% 나눔운동에 포항의 한 노점상인이 수입의 1%를 내겠다고 신청해왔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기부는 언제나 국밥장사, 콩나물장사 할머니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행렬에 돈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이제 그런 돈으로 지원받는 시민운동 역시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2001년이 시민단체들의 문전에 회원이 되거나 1% 나눔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박원순(참여연대 사무처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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