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총선연대를 정죄한 선거법의 조항이 과연 무엇인지는 분명히 할 문제이며, 대법원이 어떤 논리와 근거에 의해서 유죄를 확정했는지도 역시 따져볼 만한 문제다.
총선연대는 현행 선거법 상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 사전선거운동 금지, 선거기간 동안 인터넷, 기자회견 이외에 집회, 유인물 배포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에 의해 위법판정을 받았다.
현행 선거법의 이러한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국민의 참정권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제한다는 법조계 내외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왔고, 시민단체들도 지난 5년간 일관되게 그 개정을 요구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독소조항이 개정되지 않은 것은 정치인들의 고의적 직무유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태도가 낙선운동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총선 직전까지도 시민단체들은 낙선운동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선거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비롯한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지속했다. 선거가 끝나고 총선연대 지도부가 선거법 위반으로 대거 기소된 후에도 각 지방법원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함으로써 잘못된 선거법의 기계적 적용이 가져올 국민의 참정권의 침해를 재판과정에서 사전에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선거법을 둘러싼 이러한 실질적 논쟁점에 대한 검토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서둘러 결론을 내고 말았다. 대법원의 태도는 몇가지 점에서 균형을 잃고 있다.
우선 위헌논란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과정에서 "현행 선거법의 위헌성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며 위헌논의에 쐐기를 박았다. 헌법소원이 헌재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법원이 앞질러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이례적일 뿐더러 부적절하기까지 하다. 대법원이 지나치게 앞질러 나감으로써 각 지방법원의 판결의 재량이나 위헌법률심판제청 동의여부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하게 되고 말았다.
지방법원에서 낙선운동 관련 재판의 대다수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토록 급하게 최종심 판결을 내려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들의 경우 아직 대법원 판결이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더라도, 유독 낙선운동에 대해서 만큼은 서둘러 선고한 것 역시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만한 것이다. 2000년 12월 29일 현재 현역 의원 중 단 29명만 기소되었고 이 중 1심 선고가 내려진 경우는 7명에 불과했다. 그 중 3명만이 100만원 벌금을 선고받았고 나머지는 그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또한 낙선운동에 300만원 중형을 언도한 고법판결과 그 근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당국의 선거관리 및 지도권능을 정면에서 무력화시키는 것으로서 그 위법성도 비교적 크다"고 판시했다. 낙선운동이 고의적 선거질서문란행위인 것처럼 왜곡·폄하한 고법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총선 당시 선관위가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열기에 힘입어 후보자들의 전과, 납세, 병역 사항 등을 공개하는 등 오히려 적극적 선거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증대시킬 수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총선연대는 선거과정에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선관위와 협력하여 정책선거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점은 선관위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편, 이 대목에서 16대 총선 선거법 위반 관련 1심재판을 마친 당선자 7명 중 단 3명만이 1심에서 100만원을 선고받았고 나머지는 그 이하의 형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역대 국회의원 중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300만원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선거법의 기본정신은 뭘까? 유권자로 하여금 선거와 정치의 진정한 주인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를 민주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을 터이다.
그럼 낙선운동의 근본정신은? 아마 낙선운동을 지지했던 대다수 국민들은 유권자를 소외시킨 채로 갈수록 퇴행화되는 선거를 국민이 참여하고 발언하는 본래의 선거로 되돌려 놓고자 한 취지에 동의해서 지지한 것일 터이다.
이렇게 보면 낙선운동이야말로 선거법의 기본정신에 부합하는 유권자들의 자구적 행동이었다. 대법원이 이러한 낙선운동에 대해 '300만원 벌금이라는 흔치 않은 중형'을 서둘러 확정한 것은 법의 정신은 버리고, 도리어 진정한 선거법 정신의 묘비명이라 해야 옳을 위헌적 독소조항을 적용해 정당한 유권자운동을 정죄한 것이다.
한 일간지는 판결 다음날 사설에서 대법원 판결을 "다소 보수적으로 비치더라도 오직 '법조문과 양심'에 바탕한 심판의 엄격성, 정치성(精緻性)으로 인해 더욱 빛나는 것"으로 평가하고 "법률을 지키고 절차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바탕이요, 운동이나 캠페인보다 우선하는 가치"라고 주장했다.
실정법을 어겼으니 물론 위법임은 분명하고 법조인이 법문을 따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선해야 할 가치'가 무언인지, 이 판결에서 안타까워해야 할 다른 면은 없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시민단체들이 법정에 섬으로써 온 몸으로 알리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 사설의 행간에서조차 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읽기 힘들었다.
이태호/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gaemy@psp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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