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회성 짙은 공연에 한번도 빼먹지 않고 참여한 가수는 누구일까? 흔히 잘아는 민중가수들이겠거니 생각한 독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도전하시라. 그건 오답이니까.
이 공연에 모두 참여한 가수는 '크라잉 넛'이라는 낯선 이름의 인디밴드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새로 나온 민중가요 가수? 혹은 민중 록그룹? "Oh!no" 전혀 아니다.
갖가지 칼라로 염색을 하고 피어싱(신체의 일부에 구멍을 뚫어 금속으로 장식을 하는 것)도 요란하다. 음악장르 역시 펑크를 다룬다. 간혹 듣기 민망한 욕설까지…. 한마디로 튀고 요란하기만한 요즘 애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하거나 우습게보면 큰코 다친다.
그 누구보다도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당당히 '철폐'를 외친다.
오히려 공연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크게 회자되지 않아도 혹은 주류 가수들보다 이름이 뒤로 밀려도 개의치 않는다.
이유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연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타시스템이 횡행하는 어설픈 장난은 싫다"▼
홍대앞 클럽 '드럭'. 이곳은 크라잉 넛이 마련한 젊음의 광기가 살아 숨쉬는 작은 해방구이다.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싶고 젊음을 발산하고픈 10대와 20대. 하루종일 일만하다 시체처럼 굳어진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모여드는 문화공간.
이곳에선 록음악에 자신의 몸을 맡기면 된다. 술을 물론 그 어느것도 팔지 않고 오직 관객 스스로가 가져오는 생수만을 들고 음악에 빠져보는 장소인 것이다.
여기에 크라잉 넛만의 역동적인 음악, 바로 펑크가 기다리고 있다. 사실 3코드의 단순한 곡조에 고래고래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도 어려운 펑크가 뭐 그리 매력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펑크는 그렇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펑크는 그 자체로 신선함이고 자유,반항이에요. 그에 반해 주류음악은 어설픈 장난이죠. 스타시스템만이 횡행하고. 우리는 다양하면서도 진지한 음악을 추구합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음악을 얘기하는 악동들. 그들은 펑크록의 정신인 자유와 반항, 그리고 허무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있다.
70년대 영국의 암울한 실업분위기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펑크가 탄생했듯이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라잉 넛의 펑크록이 마니아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던 때가 우연히도 IMF경제위기라는 초유의 경제 한파를 겪었을 때니까.
인디라는 말에서 느껴지 듯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며 홀로 이겨내고픈 지친 영혼들에게 힘이 돼준것은 아닌지.
"내가 스물일곱살인데 아직 한번도 투표를 안했어요. 세상이 X같아서 그랬죠. 여기와서 젊은이들 모습을 보니 투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거죠?"
작년 4월8일 총선연대가 주최한 '희망만들기' 페스티발에서 이와 같은 도발적 언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그들. 그때 그들이 직접 '바꾸자'고 외치며 얻었던 경험이란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 공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깜짝 놀랐어요. 개판인 정치를 보고 다들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는데 시민단체가 나서서 정치권을 압박하며 뭉쳐진 힘을 보여줬잖아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에 정당한 힘이 생기고 정치인들도 약간은 눈치를 보는… 그런게 너무 좋았죠."
총선연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시민단체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시민단체가 보여주었던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 그들의 당부다. 혹여 너무 방대해지거나 직접 정치를 하게 되면서 정치판을 닮아가는 보습은 절대로 보고싶지 않다고.
▼기부문화 확산위해 나눔콘서트 참여할 것▼
인디밴드의 대명사 크라잉 넛. 이제는 문화독립군 혹은 문화게릴라라는 말이 더 부담된다고 한다. 언론이 마치 그들을 '독특한 사회현상'인 것처럼 보도하고 마구 부풀리다 보니 큰 부담만 안게 됐단다.
비록 인디밴드라고는 하지만 더 많은 대중과 만나고 호흡하고 싶은건 가수로서 갖게되는 당연한 욕심 아닐까?
이런 마음을 몰라주고 보도 후에는 나몰라라 하는 방송이나 신문 등 일반 매체에 대한 불신이 대단했다.
호들갑을 떠는 X는 다 XX해야 한다나? 거침없는 의사표현, 이전 세대에게선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다.
"살다보면 그런거지. 우후~ 말은 되지. 모두들의 잘못인가, 난 모두를 알고 있지. 닥쳐!"
크라잉 넛의 대표적 노래인 '말달리자'의 가사 중 일부다.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 높아만 보이는 세상에 대한 욕설과 반항.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은 자신들이 느끼는 허무를 지독하게 풀어낸 노래라고 한다.
비정규앨범까지 5개의 앨범작업을 했는데 그것 모두 일관된 느낌은 세상에 대한 허무란다. 물론 그들만의 광기와 자유, 반항은 기본이다.
또한 여기에 세상을 전혀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는 진지한 성찰도 스며 있다. 멤버들도 20대 중반을 넘긴 것을 생각하면 마냥 생각없이 소리지르는 애들로 보는건 오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잃어버린 낭만을 찾고 싶어요.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여유가 없고 기계처럼 바쁘게 살잖아요. 느긋할 수 있는것, 현재를 즐기는 것, 힘들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씩 웃을 수 있는 낭만,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확실히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인디밴드 크라잉 넛. 어느 것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음악을 권해주고 싶다.
경직된 당신의 어깨를 풀고 하고싶은 얘기와 몸짓을 맘껏 펼치며 자신을 찾으라고.
앞으로 통일이나 사회문제를 다룬 음악도 하고 싶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하고싶지는 않단다. 앨범 안에 녹아 들어가는 정도로. 그리고 아직은 제도권 음악에 대한 계속적인 안티를 걸고 싶단다.
주류시장에서 하나가 모든걸 먹어(?)치우면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보다도 더 나은, 더 수준높은 음악이 클럽 밴드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주겠다는 이유에서다.
3월18일 그들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나눔콘서트 공연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날 행사로 모인 돈을 누구에게 주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즉석에서 부패하고 썩은 정치인들을 갱생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시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정치인 아니냐는 것이다. 애들 싸움하는 듯한 모습은 이제 그만 보고 싶고, 직접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현장에서 시민들을 이해하고 시민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음악에 빠져 살던 고등학교 시절, 돈은 없고 배는 고파 차비로 호두과자를 사먹으며 집까지 걸어가던 때를 떠올려 '크라잉 넛'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드럭의 악동들.
그들이 자아와 허무, 광기 그리고 낭만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함께 가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서커스 유랑단' 처럼. 혹여 시간이 나지 않으면 편안한 복장에 생수도 한 병, 땀닦을 수건까지 준비해서 그들만의 해방구 '드럭'으로 찾아가자.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이 글은 참여연대의 월간지 '참여사회'3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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