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NGO회원]'굿피플' 홍보대사 아나운서 유영미씨

  • 입력 2001년 4월 17일 19시 08분


"덥죠? 여름이네, 여름이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SBS 본사 지하카페에서 만난 유영미(39)씨는 얼른 아이스커피 두 잔을 직접 가져왔다. 올 들어 처음 맛보는 아이스커피는 어느새 여름으로 가는 작은 대문을 살짝 두드리고 있었다.

낮 최고기온 24℃의 무더운 봄날 여의도, 12번째 'NGO 회원'인 유영미씨를 만났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사단법인 '선한 사람들(굿피플)'의 홍보대사이자 SBS 프로덕션의 '리얼코리아', SBS 라디오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SBS 주말 정오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유씨.

그녀는 누가 방송사 아나운서 아니랄까봐 귀를 막고 입모양만 봐도 대충은 알아들을 정도의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서울 토박이였다.

"잠깐, 어머 벌써 8년이네, 8년"

매일 새벽 5시 SBS 라디오의 개국프로그램으로 10년째 장수하고 있는 노인전문 프로그램인 '마음은 언제나 청춘'의 진행을 맡은 지 7년이라고 대답하던 그녀는 "올해가 2001년이죠?"라며 "어느새 또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고 신기해했다.

"노인문제는 삶의 질 문제에요. 노인문화가 없어요. '100세 시대'를 맞이했는데도 '은퇴 후 30년, 치매 후 20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노인분들이 설 곳이 없어요"

그녀는 노인전문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노인 전공 석사학위까지 받은 '프로'였다.

공부를 더하려면 신문방송학이나 언론학 등에 투자를 해야하지 않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있지만 그녀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영화 '친구'의 준석이처럼 '내는 내처럼 사께'라며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나운서는 아무리 작은 프로그램이라도 최선을 다해 방송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직업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

이런 열정 탓일까, 그녀에게는 '국내 최초'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노인 팬클럽 '우정회'가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지난해 5월에 가진 '우정회'의 첫 모임에는 예상인원의 3배가 넘는 300여명의 노인분들이 참석했다.

그녀는 "기절할 뻔했다"고 표현한다.

"파주, 의정부는 물론 강원도에서도 새벽차를 타고 올라오셨어요. 유영미가 어떻게 생긴 애인지 보고싶다고요. 그날 하루종일 가슴에 이름 석자를 크게 써가지고 달고 있었지요"

그날 행사는 자원봉사로 참석해 준 가수, 연주팀 등의 도움으로 노인분들과의 즐거운 시간으로 꾸며졌다.

그녀는 요즘 라디오를 통해 약간은 어려운 시도를 하고 있다. 노인분들에게 '죽음'과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장묘문화, 죽음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고 성찰하는 자세로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방송에서 흥미위주로 다루고 있는 노인의 성문제에 대해서도 애정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청취자가 생이 얼마 남지않은 노인층인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예상외로 청취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서써보기, 유산문제, 노인동거문제 등을 전문가와 함께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그녀의 방송에 '팔년지기' 친구들은 선뜻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노인권리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싶어요. 광고도 있잖아요. 젊은이 두 명이 노약자석에 앉지 않고 서서 이야기하는 내용, 그 광고 상주고 싶어요"

그녀는 지하철의 노약자석도 장애인 주차장처럼 언제나 비워둘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녀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직책이 또 하나 있다.

언론사 최초 노동조합 여성 부위원장.

아직은 300명의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중앙위원 가운데 홍일점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기도 하지만 취임 4개월째인 지금 회사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꽃을 든 금연운동이라고 실내 금연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매월 모범적인 팀장 1명을 추천받아 꽃을 선물하고 있죠. 호응도 좋아서 최종목표는 '금연빌딩'으로까지 가볼 생각이에요"

'의지있는 팀장하나 사무실을 구해낸다'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는 편지로 주고받던 사연들을 이제는 인터넷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노인분들에게 정보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다. 덕분에 이메일이 차츰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평균 하루 30통을 받는다.

"방송을 들으신 분들이 동네 복지회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컴퓨터 강좌를 들으신대요. 참 보람이 느껴져요"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준 그녀의 부탁 두 가지를 들어주기로 했다.

부탁 1. '우정회'를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실 분들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레크레이션이나 행사기획을 잘 하시는 분이면 더 좋습니다. 연락은 SBS 홈페이지(www.sbs.co.kr)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게시판에 글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 2. 위에 있는 사진은 갑작스러운 인터뷰에 지금 모습이 맘에 안든다며 유영미씨가 제공한 사진입니다.

짧다면 짧은 1시간의 대화였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수수한 차림에서 풍기는 봄 향기와 그녀의 미소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참 아름다웠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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