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자주 꼽히는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외환 위기로 83, 88, 95년 세 차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데 이어 최근 또다시 100억∼200억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아르헨티나가 경제 위기와 회복, 위기의 악순환을 반복해 온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노조의 정치 세력화와 경제 능력을 넘는 지나친 혜택 부여 등 포퓰리즘의 부작용 때문이다. 무리한 임금 인상→물가 상승→경상수지 적자 증가→외채 누적→외환 위기→긴축 재정 →노동자 파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
미국 밴더빌트대 커트 웨이런드교수는 “아르헨티나 등 일부 남미 국가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 개혁’이라는 과제를 풀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인기 영합적 정책을 시행하고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을 요구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델라루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최근 “IMF의 추가 지원을 얻기 위해 향후 5년간 재정 지출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미 거대한 정치 세력이 된 노동계는 외환위기 재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도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과 재정 지출 동결에 반발,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오래 전부터 페론 정부가 대중의 인기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기업의 생산 활동이 피폐되고 나라 살림 곳간이 텅 비었다. 잘못된 인기 영합정책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오래 가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80년대까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달려오던 일본 경제는 90년대에 재정 적자 확대와 경기 침체라는 ‘두 가지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이 때문에 일본의 90년대는 흔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일본 정부는 경기가 움츠러들면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인기 영합적 부양책을 쏟아냈다. 90년대에 무려 8차례, 총 107조엔(약1155조원)규모의 부양책이 나왔다. 당연히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일본의 재정 적자 급증을 이유로 98년말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최상급인 트리플 A(Aaa)에서 더블 A1(Aa1)으로 낮췄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90년대 일본 경제는 어려움을 면치 못했다. 97∼98 회계연도에는 사상 처음으로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없이 도로와 교량 건설 등 재래형 공공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특히 집권 자민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분야에 선심성 정책이 남발됨으로써 효율을 떨어뜨렸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이같은 반성을 토대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80년대 후반 ‘거품경제 유산’인 설비와 채무 고용 등 ‘3개의 과잉’을 줄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권순활·구자룡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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