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라 ‘구직 중인 실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노동운동과 산업별 노조의 역사가 오랜 유럽국가들은 이미 실업자들이 소속 산별노조에 가입해 권익향상을 요구하고 있고 정년퇴직자들도 노조로 조직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실업자노조가 탄생하려면 우선 상급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고 관련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명시해 실업자를 노조가입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교섭권에 대한 제약이 없으면 교섭 당사자가 불명확해지는 등 법 체계상에 혼란이 온다”며 “무조건 단결권과 교섭권을 보장한다면 극단적인 경우 정치인이 사람들을 모아 노조를 만들고 단체행동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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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경우 실업자 노조는 대체로 정부를 교섭상대로 한다. 정부의 실업정책이나 복지혜택과 관련한 집단행동이 빈번히 일어나고 관공서를 점거하는 등의 과격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직근로자와의 교섭창구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어 마구잡이 교섭은 벌어지지 않는다.
민주노총 손낙구(孫洛龜)교육선전실장은 “현재로는 취업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교섭양식만 개발돼 있어 실업자노조가 생기면 새로운 형태의 교섭내용과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해고된 간호사들이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한다면 개별 사업장이 아닌 의사협회나 정부와의 교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초 이 사안은 해고된 노조간부의 위상 문제로 98년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기로 합의된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안이 부결됐고 이 ‘약속 파기’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 사유의 하나가 됐다.
그러나 이번 법원의 판결로 실업자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의 변화 여부가 주목된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경총 "구조조정 사업장에 악영향"▼
조남홍(趙南弘)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노조는 사용자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며 “그런데 구직자나 실직자가 노조에 포함된다는 것은 노조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부회장은 “노동조합법에도 노조 가입대상이 ‘임금이나 기타 봉급에 의해 생활하는 자’라고 명백히 규정돼 있다”며 “만일 이번 판결이 실직자에게도 적용된다면 구조조정을 추진중인 사업장에서 노사 쟁의행위가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특정 사업장에 소속되지 않은 실직자나 구직자가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는 것은 노조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며 “특히 실직자의 경우 구조조정을 추진중인 사업장의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민노총 "실업자 권익보호 도움될것"▼
민주노총(위원장 단병호·段炳浩)은 16일 이번 판결에 환영 성명을 내고 실업노동자 조직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성명서에서 “98년 실업자에게 노조원 자격을 주기로 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사항을 정부와 국회가 법개정을 미루며 이행하지 않는 가운데 내려진 의미있는 판결”이라며 “실업자 권익 보호와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빠른 시일내에 산업별 지역별 노조의 규약을 개정해 실업자를 조합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일에 착수할 방침이다.
한국노총(위원장 이남순·李南淳)도 “외국의 경우 실업자의 노조활동이 활발한데 우리는 제도적으로 뒤져 있었다”며 “실업자 권익 보호와 실질적인 노동3권 인정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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