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취재팀이 접촉한 국토계획 관련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발과 환경의 조화, 친환경적 국토관리를 위한 마스터플랜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외국은 어떻게 관리하나〓20세기 초 영국. ‘내땅 내맘대로’ 의식이 만연하면서 난개발의 홍역을 앓았다. 토지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권리로 인정됐고 개발 이익을 노린 사람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국토가 파괴되었다. 사유지에 대한 개발 제한은 거의 불가능했고 땅투기가 전국을 휩쓸었다.
“영국이 1947년 토지 소유주의 반발을 무릅쓰고 소유권과 개발권의 분리 및 개발권 국유화, 개발허가제 등을 골자로 하는 ‘도시 및 농촌계획법’을 제정해 ‘사회주의’ 색채를 띤 국토 관리에 나선 것은 이런 사회경제적 배경을 깔고 있다.”(경원대 최병선·崔秉瑄교수)
독일의 국토정책도 영국 못지 않다. 개발이 가능한 토지의 경우 ‘지구상세계획’을 수립, 건물 규모와 층수까지 계획에 맞아야만 신축 허가를 내준다. 기존 시가지의 경우에도 ‘주변과 조화된 건물’만 지을 수 있다. 주변 건물이 5층이면 5층으로 지어야 하고 건물색이 노란색이면 노란색으로 짓도록 돼 있다.
특히 1970년대부터 개발과 환경문제에 대한 통합작업이 시작되면서 자연환경보전과 경관 관리를 위한 공간계획이 구축돼 있다. 영국 독일과 달리 땅이 넓어 상대적으로 토지 이용이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그린벨트가 확대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
1. 정치논리에 춤추는 개발 |
▽국토정책, 공익이 우선돼야〓전문가들은 “토지를 소유했다는 것만으로 돈을 벌게 해주는 제도가 문제다”(서울대환경대학원 이정전·李正典교수), “개발지로 변경만 돼도 큰 돈을 버는 체계가 유지되는 한 개발에 대한 유혹은 뿌리칠 수 없다”(국토연구원 이정식·李廷植원장)고 지적하고 있다.
이정전교수는 “영국이나 독일처럼 토지소유권과 개발권을 분리해 개발권은 ‘공공의 소유’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는 우량 농지를 보전하기 위해 소유권은 인정하되 개발권을 정부가 소유자로부터 미리 매입하는 ‘개발권 선매제도’, 특정 지역에 대한 개발을 못하게 하는 대신 해당 토지의 소유자가 다른 지역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권 양도제’ 등도 도입돼 있다. 국토연구원 관계자도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토지는 곧 재산’인 우리나라 현실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린벨트까지 해제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그런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것. 이정식원장은 이 문제와 관련, “개발 이익 환수 제도를 강화함으로써 쉽게 돈을 버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원장은 “기반시설 ‘무임승차’ 방지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소규모 택지를 개발하는 경우 기존 대도시나 신도시 기반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기반시설을 이용하는데 따른 비용을 물리게 되면 소규모 택지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국립환경연구원 최덕일(崔德一)원장도 “개발 이익은 수혜자가 뚜렷하지만 환경비용은 모든 국민이 나눠 지불해야 한다”며 “환경 비용을 크게 물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자〓건설교통부의 4차 국토종합계획에 따르면 현재 도시용지는 전체 국토의 5.4%(5372㎢). 2020년까지 3848㎢를 더 개발할 계획이다. 이 계획을 놓고 “공급 위주의 시각이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있지만 어디를 보전하고 어디를 개발할지에 대한 밑그림이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변병설(邊秉卨)박사는 “토지에 대한 환경기초조사를 거쳐 국토환경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국토를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 개발 관련 부처가 일을 벌여놓고 환경부가 뒤치다꺼리하는 왜곡된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토연구원 박헌주(朴憲注)토지주택연구실장도 “토지적성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하며 개발과 기반시설 확충을 연동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새만금 사업 논란을 계기로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 사업의 경우 사전에 경제적 타당성 뿐만 아니라 환경적 타당성을 함께 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의 김재형(金在亨)소장은 “99년 이후 500억원 이상 규모의 국책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49건의 국책사업 중 22건이 반려됐다”며 사업 중간단계에도 타당성 조사를 해야 하며 특히 타당성조사에서 환경적 측면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이상돈(李相敦·법학)교수는 “개발이익만을 생각하고 국토를 망치는 마구잡이 개발이 많지만 개발이익도 없으면서 피해만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며 “환경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려면 수익과 환경 비용을 철저히 따져 균형을 이루는 사업이 아니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국토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특별취재팀>
▼도움을 주신 분들(가나다순)▼
곽결호 환경부 환경정책국장, 김재형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소장, 김정수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책국장, 문정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사무국장, 박병주 홍익대 명예교수, 박헌주 국토연구원 토지주택연구실장, 변병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상문 협성대 교수, 이상은 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이정식 국토연구원장,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정동철 골프장사업협회 홍보팀장, 정연만 환경부 국토환경보전과장, 최덕일 국립환경연구원장, 최병선 경원대 교수, 최재덕 건설교통부 국토정책국장, 홍철 인천대 총장, 황희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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