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충대충’ 하는 법조인들이 설 땅이 없다는 기대도 있지만 새 제도가 대법원의 청사진처럼 조기 정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상되는 변화〓변호사가 민사사건을 수임하면 일단 “원고의 주장은 부당하다”는 형식적인 답변서만을 써낸 뒤 가능한 한 시간을 끌던 것이 대체적인 업계의 관행이었다.
또 한달에 한번 법정에 나가 사무장이 작성해 준 서류를 내거나 큰돈이 안되는 사건은 내용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제부터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주장과 증거, 증인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정리, 확보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또 사건의 내용도 내 일처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서면공방’이 끝난 뒤 새 주장이나 증거를 내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고 장시간 진행되는 법정 재판에 사건을 잘 모른 채 나갔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판사 역시 사건 폭증을 이유로 변호사가 내는 서류를 쌓아 놓았다가 판결 직전에야 읽어보거나 내용이 복잡한 ‘깡치사건’은 인사를 기다려 후임자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는 ‘법정공방’에서 한 사건을 충분하게 심리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서면공방’ 내용을 사전에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일단 맡은 사건은 원칙적으로 다음 인사발령 전에 처리를 해야 한다.
▽문제점〓가장 큰 복병은 법조인들의 ‘관성’. 대법원은 90년대 후반 이번 제도와 유사한 ‘집중심리제도’를 시범 실시했으나 대다수 변호사들이 “우리가 옛날 식으로 하겠다는데 법원 혼자 별수 있느냐”며 저항해 제도의 확대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판사 수가 태부족인 현실에서 판사들이 모든 사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줄지도 미지수. 변호사들이 고의이건 실수이건 증거를 뒤늦게 제출할 경우 이들과 각종 인연 및 학연으로 얽힌 판사들이 원칙대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재판 증거로 감정서나 공문서를 발부하는 외부기관들이 제때 협조를 해주지 않을 경우, 그리고 핵심 증인이 사라질 경우 당사자는 법정에 서보지도 못하고 1, 2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재판 절차가 다소 세밀해지고 복잡해지는 경우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변호사를 선임한 상대방보다 불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신석호·이정은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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