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한심하지만 굶길 수는 없어 며느리에게 미술학원을 차려줬고 요즘도 생활비를 대주고 있다.”
▼감정 양극화 우발범죄 우려▼
나이로는 어른인데 부모에게 무작정 기대어 사는 ‘장진구형 애어른’(TV드라마 주인공)이 늘고 있다. 정신과에선 이들을 ‘의존성향 또는 의존장애’로 진단한다. 이는 전통적 가족중심 문화에다 70년대 이후 부모들의 과보호,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젊은층의 경제적 곤란이 겹쳐 생겨나는 현상. 특히 외국인의 눈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한국적 현상’이다.
▼글 쓰는 순서▼ |
- '홀로서기 기피' - 외모 만능주의 - 집단 히스테리 - 두얼굴의 '인격' - 평등 지상주의 |
1994년부터 다국적 PR회사 ‘메리트 버슨 마스텔러’에서 근무 중인 영국인 스티브 보웬(33)은 재작년 일본에 유학 중인 한국인 친구를 방문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는 부모에게 학자금과 생활비를 모두 타내 자신의 아파트에 온갖 전자용품을 갖추고 있었다. 보웬씨는 영국 뉴캐슬에서 친구들과 함께 골방을 빌려 살 때를 떠올렸다. 하도 배가 고파 고양이 사료를 먹은 적도 있었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은 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독립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주한 일본대사관 이세키 요시아스(井關至康·30) 2등서기관은 “일본 젊은이들은 대학 등록금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만 졸업 뒤엔 완전 독립한다. 한국처럼 결혼 뒤에도 부모에게 기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의존성향의 젊은이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는 ‘불안장애’, 강박적으로 사물이나 사람에 집착하는 ‘강박장애’, 감정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경계선 인격장애’ 등의 장애를 보이고 자칫하면 폭발해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런 ‘애어른’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부모를 찾는다.
인터넷 벤처기업의 이모팀장(37)은 최근 부하 직원 권모대리(30)의 결근사유를 듣고 아연실색했다. 권대리는 회사 회식이 끝난 뒤 밤 12시경 집에 갔다. 아내는 겨우 돌이 지난 아이를 떠넘기고 문을 잠가버렸다. 권대리는 승용차 안에서 밤을 새고 나서 아침에 대전 본가에 전화했다. 그는 어머니가 온 뒤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형사정책연구원 조병인 수석연구원은 “권씨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면 다행”이라면서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면 자살이나 범죄 등을 택하게 되며 이것이 요즘 사회문제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의존성향의 신세대는 독립적 인격이 없으므로 모든 책임을 부모나 사회에 극단적으로 돌린다는 것. 지난해 부모를 토막살해한 명문대생도 사실 부모에 지극히 의존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화점 과소비 '주범'▼
의존성향 신세대의 증가는 경제시스템도 왜곡시키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2월 카드매출액은 183억7500만원. 이 가운데 부모의 재산세 납입증명서를 제출해야 카드가 나와 소득이 없는 20, 30대가 팔아주는 비율이 10%가 넘는 19억5000만원. 이 백화점 관계자는 “부모의 카드를 쓴 경우까지 합치면 최소 20%가 ‘무직 젊은이’들이 쓴 것”이라면서 “지난해 총 매출 8000억원 중 2000억원 이상이 ‘소득이 없는 신세대’로부터 벌어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선진국에선 아이에게 남을 배려하는 것부터 가르치며 이는 곧 독립적 인격의 바탕”이라면서 “전통적 가족문화에만 집착해 자녀를 뒤치다꺼리하기만 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정상아만 양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오명철차장(팀장·이슈부)
이성주 이호갑 이은우 김준석기자(이상 이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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