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팀원이 팀장인 부장(45)이 여자사환과 ‘섬싱(Something)’이 있었다는 소문을 문제 삼았다. 유씨는 평소 부장을 존경했고 부장이 없으면 당장 팀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여겼다. ‘섬싱’도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부 회의에서 2, 3명이 부장을 성토하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사태는 과장되어 상부에 보고됐고 부장은 해고됐다.
유씨는 회의 때 입도 열지 못한 자괴감에 시달리다 정신과를 찾았다. 유씨를 진료한 정혜신박사(마음과 마음 병원장)는 “유씨는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더 많았는데도 모두 침묵했다는 사실에 더 우울해졌다”면서 “집단에서 이탈되면 불이익을 당할까 ‘불안한 사회’에선 개인이 합리적으로 제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중의 의견’과 생각이 다를 경우 드러내지 않고 점점 위축된다고 설명한다.
▼글 쓰는 순서▼ |
- '홀로서기 기피' - 외모 만능주의 - 집단 히스테리 - 두얼굴의 '인격' - 평등 지상주의 |
‘집단의 광기’가 우리 사회를 휩싸고 있다. 혼자선 합리적인 개인이 집단 안에서는 달라진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집단 히스테리’로 진단한다. 사무직 노조원이 사장을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을 하고 모범생이 연예인 팬클럽에 가면 경쟁 팬클럽과 주먹다짐을 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교수는 “집단에 속하면 공격성과 성욕 같은 본능적 충동이 거세지며 혼자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과격한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합리적 주장을 펴는 사람은 집단의 ‘융단폭격’을 받는다.
대전대 생명과학부 남상호교수(곤충학)는 지난해 가을 ‘우담바라 소동’ 때 ‘소신발언’을 했다가 석달 가까이 곤욕을 치렀다. 당시 서울 남쪽 청계산 청계사와 관악산 연주암 등에서 불상에 수염같은 물체가 솟아나자 불교계는 3000년에 한번 피는 성스러운 꽃인 우담바라라고 흥분했고 신도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모여들었다. 정치인들도 사찰을 찾았다.
남교수가 곤충학자의 소신으로 “풀잠자리의 알”이라고 밝히자 ‘불교를 음해했다’는 협박전화가 빗발쳤으며 소송을 걸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남교수는 “아는 스님 중에도 진실을 알면서 ‘대세’ 탓에 입을 열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소동은 결국 한 소신있는 스님의 일갈로 진정됐다.
집단 광기 뒤에는 이득을 보는 사람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감정의 뒤엔 일부 정치인, 팬클럽의 광기 뒤엔 연예기획사, 모함과 투서 뒤엔 ‘경쟁자’,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광기 뒤엔 사탕회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교수는 “중세의 마녀사냥이 역설적으로 당시 사회가 너무 금욕적이어서 나타났듯 우리 사회는 평소 너무 많은 긴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가 집단히스테리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학연 및 지연주의도 개인의 판단을 마비시키고 ‘우리편은 무조건 옳고 반대편은 나쁘다’는 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좌우 이념 차이조차도 지역정서의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까지 한다.
H사 손모과장(35)은 지난해 추석 성묘길에 가족 간 싸움에 휩싸였다. 주차문제로 동생과 40대 여성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가족간 폭력으로까지 발전했다. 손과장은 동생을 꾸짖으며 싸움을 말렸지만 나중에 아버지와 가족들은 “남의 편을 드는 나쁜 놈”이라고 꾸짖었다. 개인사업가 윤모씨(40·승강기 판매)는 최근 대구의 한 모임에서 호남도 경제사정이 나쁜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가 욕설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지역주의는 도를 넘어 인터넷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청와대, 정부 부처, 시민단체, 각 언론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엔 네티즌들이 출신지별로 나눠 익명성을 내세워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상대 지역인을 비난하는 글들을 끊임없이 올리고 있다.
동아닷컴 뉴스팀 최영록부장은 “정상인이 봐서는 낯이 뜨거울 정도로 험한 욕으로 가득한 글들이 난무해 사이트 운영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서 “또 하루 100개 이상 지우고 있는데 지우면 또 지운다고 욕하는 글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단 광기의 치유는 개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범희교수는 “옛 선비들의 신독(愼獨) 정신처럼 폭력을 멀리하고 감성을 풍부히 하면 개성과 합리성을 되찾을 수 있다”면서 독서와 예술활동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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