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서울 하늘 숨막힌다]공기는 돈이다

  • 입력 2001년 3월 28일 19시 33분


지난해 4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초빙연구원으로 온 일본 간사이(關西)대 아베 세이지(安部成治·50)교수는 1년 동안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오사카(大阪)에서는 고개만 쳐들면 볼 수 있던 파란 하늘이 서울에서는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귀한 광경이 된 것.

서울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돼서 아베교수는 연구실 창밖의 뿌연 하늘에 질려 창쪽으로 향해 있던 책상을 문 쪽으로 돌려놓았다.

“어떻게 이런 공기를 마시면서 사는지 참 궁금합니다.”

▼대기오염과 도시경쟁력▼

이제 대기의 질(質)은 단순한 환경문제의 수준을 넘어 도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중요요소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삶의 질’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대기오염 문제를 얘기한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와 외국인투자자문회의(FIAC)가 공동주최한 세미나에서 스위스 다국적 컨설팅그룹인 윌리엄 머서사는 세계 12개 주요도시의 ‘삶의 질’ 순위를 발표했다. 총 10개 분야 39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 서울은 7위에 머물렀다. 서울을 하위권으로 만든 항목이 바로 대기오염. 10점 만점에 4점을 받았다.

비록 90년대 이후 일부 오염물질의 농도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서울의 대기질이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부산녹색연합의 세미나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월드컵 개최도시 10곳의 대기오염도는 일본 개최도시 10곳에 비해 2배 이상이었다.

서울과 도쿄의 각종 오염도 수치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나은 것은 오존(A)농도뿐이었다.

▼연재순서▼

- 1. 사람잡는 대기 오염
- 2. 생태계도 변했다
- 3. 오염운반체 황사
- 4. 공기는 돈이다
- 5. 숨쉴수 있는 공기를

▼투자와 관광에도 악영향▼

지난해 4월 홍콩의 대표적인 일간지 ‘명보(明報)’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사가 실렸다. 호주의 한 단체가 홍콩에서 열기로 했던 국제회의를 대기오염을 이유로 취소했다는 것이다.

홍콩의 대기오염도는 서울에 비해 별로 나을 것이 없다. 9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뉴욕 도쿄 멕시코시티 등 세계 16개국 30개 도시의 경쟁력을 비교했을 때도 대기오염도가 포함된 생활환경 분야에서 홍콩은 29위, 서울은 30위를 기록했을 정도. 서울이 홍콩과 같은 ‘봉변’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기질은 외국기업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에서 3년째 투자자문을 하는 테리 투하스키씨(텔러스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서울은 도쿄나 싱가포르처럼 경제적 인프라나 행정서비스가 잘 돼 있지 않은데다가 대기질마저 좋지 않아 외국기업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상당히 적다”며 “최근 들어 대기질이 투자조건 중의 한 변수가 됐다”고 말했다.

뿌연 서울 하늘(위)과 맑은 뉴욕 하늘(아래)▶

관광 분야에서 대기오염이 중요한 변수의 하나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여행사 근무 9년째인 이재준(李在濬·31)씨는 2년 전부터 서울 공기가 탁하다고 불평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특히 열흘 이상 장기체류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한다는 것. 이씨는 “이들 중에는 ‘서울은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장기체류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L여행사 관광가이드 김모씨(21·여)는 “사나흘 머무는 여행객들도 ‘서울은 아침에도 뿌옇고 저녁에도 뿌옇다’고 한다”며 “특히 황사까지 오는 봄철에는 전망대에 올라가도 볼만한 풍경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2467명을 상대로 한국여행에서 인상깊었던 점을 조사했다.

‘날씨가 청명하다’는 항목에 답한 관광객은 24.4%에 불과했다. 이는 98년에 비해 4%포인트 줄어든 수치. ‘맑고 깨끗한 옥빛 하늘’이 더 이상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각해졌다는 뜻이다.

▼서울, 삶의 질▼

혼탁한 공기를 피해 ‘탈(脫)서울’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 빨래를 해도 집 밖에서 말리는 광경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무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열기가 조심스럽다. 한번 입은 와이셔츠를 다음날 다시 입기에는 목둘레가 너무 시커멓다.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김영준(金英俊)교수는 자신이 학위를 받은 미국 콜로라도대학 인근의 푸른 하늘을 잊지 못한다. 주정부가 맑은 날의 하늘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맑은 하늘이면 만족하겠느냐고 주민들에게 일일이 물은 뒤 시정거리 기준을 정했다는 것.

그 기준에 맞춰 주정부는 시정거리에 악영향을 미칠 각종 오염물질 배출량을 규제했다. 이는 대기의 질과 삶의 질이 조화를 이루는 전형적인 예라고 김교수는 술회한다.

97년 세계 30개 도시의 경쟁력을 조사했던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도시경쟁력 가운데 ‘삶의 질’ 범주에서 대기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오염 사회적 손실 GDP의 0.5~2.5%▼

오염된 공기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얼마나 될까.

사회적 비용은 크게 건강피해비용과 비건강비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숭실대 경제통상학부 조준모(趙俊模)교수는 94년 대기중 이산화질소(E)가 우리 국민들에게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위해효과를 돈으로 환산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연간 약 1조4835억원.

그 해 호흡기질환자 수에 건당 진료비와 노동손실비용 등을 곱해 계산한 것. 호흡기 질환 1건당 14만4698원이 들었다. 여기에 물적 손실과 생태계 손실 등 비건강비용을 포함하면 대략 연간 8조20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됐다는 것.

세계은행은 99년 개발도상국에서 대기오염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0.5%∼2.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94년 우리나라의 GDP는 약 347조원이었으니 거의 들어맞는 셈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김운수(金雲洙)박사는 지난해 서울시 대기오염의 사회적 비용을 오염물질별로 추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97년을 기준으로 연간 약 7177억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했다. 오염물질 배출량으로 보면 이산화질소(E)가 톤당 569만원으로 가장 많은 손실을 가져왔고 일산화탄소(CO)는 톤당 24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는 최근 대기상황이 과거와 달리 일산화탄소에 비해 이산화질소로부터 더 크게 영향받고 있음을 반영한다.

한편 대기오염이 줄어들면 집값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96년 고려대 곽승준(郭承俊)교수 등은 대기 중 분진의 양이 감소할수록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분진감소율이 50%에 이르면 서울시내의 31.5평형 아파트의 가격이 최대 2277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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